“제주어, 우스꽝스런 말인가”
부쩍 늘어난 제주어 안내 문구
볼 때마다 안타까움 금할 수 없어
개그 소재쯤으로 다뤄지는 느낌
제주이미지 왜곡 정형화 우려
‘언어’ 지역 가치 담은 삶의 표현
금전 환산되는 상품이어선 안돼
호주의 영어 발음은 독특하다. 우리가 배운 ‘정통’ 영어와는 다른 발음 때문에 황당하게 들리는 경우도 있다. 특히 ‘a’ 발음이 그렇다. 같은 영어권이면서 가령 ‘sunday, monday’를 ‘선다이, 먼다이’라고 읽는다.
한번은 월남전이 한창일 때 현지에 도착한 호주 병사가 “I came here today”(나는 오늘 이 곳에 도착했다)라고 하자, 미군병사들이 웃음보를 터뜨렸다. “I came here to die”(나는 죽기 위해 이곳에 왔다)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관광객들은 제주 사람들의 말에 신기해한다. 시장에서 할머니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한국어로 다시 통역해 주었다는 말까지 나돈다. 하긴 내가 대학 신입생 때 ‘육지’ 선배들이 제일 먼저 요구한 것은 “제주사투리를 말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 행정에서 버스 정류장에까지 제주어를 소개하는 문구들이 많다, ‘오젠허난 속았져’ ‘빙삭이 웃으멍 아맹바도 곱따컨이녁’ 등등.
이러한 장면을 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시선을 끌기 위한 노력이 정작 외부인에게는 어떻게 비추어질까? 거칠게 표현하자면 시내 곳곳에 소개해 놓은 제주 사람들의 말들을 보면 마치 개그 프로의 소재쯤으로 다루어질 내용들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문제는 이런 식의 제주의 이미지가 왜곡된 채 정형화(streotyped)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정형화된다는 것은 제주사회의 어떤 측면들이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빠뜨려지고 만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조센징은 어떻고, 쪽바리는 어떠하며, 호남사람, 영남사람, 제주사람들은 어떻다는 식의 이미지는 깊숙이 들여다보면 지극히 편협한 시각에서 빚어낸 것들이다.
문화가 서로 만나면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는 타자화, 즉 중심부를 강조하기 위해 주변부를 열등한 문화로 평가 절하하는 것이다. 지방의 언어를 사투리로 바라보는 시각이 단적인 예다.
스페인의 왕, 펠리페 5세가 언어를 정화시킨다는 명목으로 표준어를 만들어 이를 어겼을 때 처벌하도록 한 것이나 ‘프랑스의 지성’ 볼테르가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을 가리켜 아프리카 야만인보다 더 열등한 사람이라고 한 것은 식자층의 언어 독점을 통한 타자화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미군병사들이 호주병사의 말에 박장대소했던 이유 역시 미국인들의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대를 대할 때에는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왜 도시풍의 세련됨과 시골(지방)풍의 촌스러움을 대비시키는 그런 만들어지는 신화를 행정이 앞장서서 노력하는 것일까? 제주어를 보존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추진에 앞서 표준어 담론의 타자화 신화를 우리 스스로 재연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제주어를 거론하는 이유는 외부인이나 후손들에게 신기하고 우스운 말을 소개시키려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우스꽝스런 말은 이 지구상 그 어느 곳에도 없다. 서로 다른 말이 있을 따름이다.
언어란 그 지역 주민의 가치와 사고를 담은 삶의 표현이다. 따라서 언어의 본질적인 가치는 도구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에 내재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제주 한란의 가치가 바로 그 청초함 자체에 있을 뿐 어떤 목적에 비추어 도구적으로 계산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고려청자는 매매가와 관계없이 아름답고 귀한 것과 같다.
제주도의 자연과 문화는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본질적 가치이다. 방문하는 관광객의 수와는 무관하게 그 자체가 도구적으로 계산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신적 표현인 제주 사람들의 말 또한 어떤 목적을 위한 전략적 수단이 아니며, 금전적으로 환산될 수 있는 상품이 돼서도 안 된다. 제주어는 외부 방문객들이나 후손들의 호기심과는 무관하게 그것이 담고 있는 정신의 진실성과 고귀성 그리고 폭과 깊이에 의해서만 평가돼야 한다. 제주어가 그들에게 웃음거리를 제공하는 문화 상품화는 우리들의 삶과는 상관없이 고객의 구미에
맞는 왜곡된 제주 이미지를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