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의정 갈등, 정당정치로 풀어야
元지사 ‘협치’ 구호 무색하게
自黨 도의원 지지도 못 받는 현실
예산전쟁 되풀이 등 불안 요인
도정의 안정적 운용 위해선
철학?가치 공유 원내세력 있어야
정당정치 복원 책임정치 필요
‘찬성 34, 반대 0, 기권 2’. 올해 제주도 제2회 추경예산안에 대한 도의회 본회의 표결 결과다. 예결특위에서 계수 조정된 예산안이 도의원 1명의 반대도 없이 가결 처리됐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이날 도의회 증액예산에 대해 ‘부동의(不同意)’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그의 의사는 철저히 묵살됐다. 원(元)도정의 허약성이 드러났다. 도지사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도정을 뒷받침할 세력이 원내(院內)에 없는 것이 확인됐다. 앞서 “타당한 증액은 동의하겠다”는 원칙을 밝혔음에도 동조하는 우군(友軍)은 없었다. 원 지사 소속인 새누리당 도의원(18명)도 모두 외면했다. ‘협치(協治)’ 구호가 무색할 정도다. 원 지사의 정치력에 물음표가 던져졌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이제 예산전쟁은 매년 되풀이될 전망이다. 도의회는 벌써부터 선전포고했다. 이경용 예결특위원장은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추가경정예산 계수조정 때 집행부에서 제시한 특혜성 사업과 형평성 위반 사업 등을 2016년 본예산 심의 과정에서 원칙에 의해 철저하게 심사하겠다”고 밝혔다. “도의회 증액예산을 집행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집행부에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예산을 놓고 양측의 첨예한 대립이 예상된다. 그로 인한 앙금은 일반 정책 추진에도 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 집행부와 도의회 간 불필요한 갈등이 다반사로 일어나 행정력 낭비와 행정 불신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그 피해는 도민에게 돌아간다.
대책이 필요하다. 도지사와 도의원들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다고 ‘예산 주고받기’ 식 타협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미봉책이다. 시스템적으로 접근해야 하다. 도정의 안정적 운용을 위해서는 의회 내 지지 세력 구축이 필수적이다. 정치는 세력 싸움이다. 명분과 원칙만으론 안 된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을 개발해도 도의원들이 반대하면 허사다. 도정 비전을 실현하려면 철학과 가치를 같이 하는 도의원들이 다수 있어야 한다.
정당정치가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 도정과 원내 다수당 등이 정책 공유를 하고, 여론을 조성·추진해 그 결과도 함께 책임지는 정치시스템 작동이 필요하다. 원 지사는 “당·청(靑)은 공동운명체이자 한 몸”이라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제주지역에서는 특별자치도 이후 정당정치가 실종됐다. 무소속 도지사 영향이 컸다. 정당은 선거 때 간판용일 뿐이다. 원(院) 구성 후엔 사실상 일당(一黨)이 된다. 최근 구성지 도의회 의장이 도정 공격에 선봉장으로 나서고 있다. ‘도의회당’ 당수(首)인 듯하다. 여·야 간 대립을 거중조정(居中調整)하는 의장 본연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정당정치가 없는 데서 비롯된 현상이다. 도의회에는 각 당별로 원내대표가 있지만 그 역할을 도민은 물론 본인들도 잘 모른다. 지방정가에서 ‘당론(黨論)’이라는 말은 생소하다. 정당 이름으로 정책 제시는 거의 없다. 조례 발의 때도 당보다는 선·후배 등 인맥이 더 작용한다고 한다. 도의회에서도 소위 ‘괸당 문화’가 판치고 있다.
지방정치 발전을 위해서는 특별자치도에 맞는 ‘제주형’ 정당정치 모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정당정치는 의회정치와 민주정치 구현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정당정치가 활성화되면 자연스레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가 조성된다. 집행부에 대한 야당의 견제기능은 더욱 강해진다. 또 여·야 간 정책 경쟁으로 지방정치의 품격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예산을 두고 집행부와 도의회가 벌이는 볼썽사나운 아귀다툼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원 지사가 같은 당 도의원들에게조차 발목을 잡혀서는 제주도정이 내세우는 ‘더 큰 제주’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협치는 자당(自黨) 도의원을 우선해 이뤄져야 한다. 당·정협의회를 강화해야 한다. 그것을 제주지역의 정당정치 복원의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