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너무 부족한 대한민국

2015-08-05     김효철

친일잔재 해결보다 더 많은 과제
사회적경제 등 ‘희망찾기’는 있다


일제 강점기 때 독립군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암살’이 인기몰이 중이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인데다 일본 아베 정권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안보법제’ 추진이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분이 암살로 표출되고 있는 듯 싶다.


영화에서 독립군을 밀고하고 죽였던 변절자이자 친일파인 염석진은 해방 후에는 애국자로 둔갑, 경찰 간부로 권력을 누리며 살아남는다. 현실에선 친일파들이 후손 대대로 이 땅에서 권력을 누리는 것과 반대로 영화 속 그는 옛 독립군에 의해 뒤늦은 처형으로 단죄된다.
 

그가 친일에 대한 변명으로 남긴 말, “해방될지 몰랐으니까. 알았으면 그랬겠나” 솔직한 듯하나 비겁한 변명이다. 일제 강점이 영원할 것이라, 해방은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현실과의 타협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자기변명일 뿐이다. 염석진은 정말 해방이 될 줄 몰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사는 것이 달콤해서 조국을 버린 것이다.
 

그 시절 독립운동을 했던 많은 이들이 일제 강점이 낳은 잔혹한 현실을 봤고 언젠가 독립이 될 거라는 희망을 믿었다. 실낱같은 가능성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당장 눈앞에 있는 부와 권력, 심지어 목숨까지도 버리고 독립운동을 하게 했다.

안타깝게도 70년이 지난 지금, 친일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는 민족적 상처를 안은 채 분단체제와 사회적 모순으로 가득 찬 사회를 살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조차 달래주지 못했으며, 경제성장 그늘 아래 노동자들은 해고와 죽음을 반복하고 있다. 사회는 불평등을 넘어 이중 사회로 접어들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근로빈곤층이 400만명에 이르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도 그랬듯이 희망을 찾기 위한 노력은 있다.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으로 협동조합 운동은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했다. 사회적경제를 활성화하기위한 관심과 노력도 늘고 있으며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 움직임도 있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은 시장경제가 낳은 양극화가 공동체 사회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에 따른 것이다. 대안으로 사회적기업·마을기업·자활기업·협동조합·사회적협동조합 등 사회적경제 활성화와 이를 위한 정부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국민이 누려야할 기본적 행복권을 보장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자활사업도 15년째 이어지며 저소득주민을 위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사람마다 생각과 선택이 달랐듯이 한국사회를 보는 생각도 다르고 선택도 다르다. 최악으로 치닫는 시장경제체제에서 너무 작은 희망처럼 보이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경제기본법조차도 기업경영을 어렵게 하는 반민주·반시장인 사회주의 정책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세 모녀 사건 등 끊임없는 저소득민들의 자살 소식에도 ‘복지병’이 든다며 복지축소를 얘기하고 있다.

정치는 또 어떠한가. 이미 자본아래 놓인 거대 정당은 비록 여·야로 나뉘어 다른 듯 하지만 그다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수십 년을 지배해오고 있다. 그 속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나 농민·저소득주민·장애인·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사회문제를 풀고 통합해야하는 정치제도마저 경제제체나 다름없는 승자독식구도인 탓이다. 승자만이 모든 권력을 갖는 선거제도로 총선거 때마다 당선자가 받은 표보다도 더 많은 1000만 표가 아무런 의미 없이 사라지고 있다. 그나마 비례대표제를 통해 소수 정당이 국회에서 작은 목소리라도 내고 있으나 과반이 넘는 거대여당은 비례대표수를 오히려 줄이려 한다.

해방 70년을 맞아 우리에게는 아직도 친일 잔재 해결과 함께 그보다 더 많은 과제들이 놓여 있다. 그 출발은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 모습은 영원하지도, 당연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