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살인이다”

2015-07-23     김철웅

국정원 임 과장 극단적 선택
유서에 절절한 가족 사랑
이유 불문하고 자살은 안돼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잘못’
억울함과 진상 밝혔어야
남겨진 사람 고통도 아주 크다

“여보! 짊어질 짐들이 너무 무겁다. … 잘 부탁해. 당신을 정말 사랑해.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자. 부족한 나를 그토록 많이 사랑해줘서 고마워. 사랑해” 지난 18일 ‘국정원 해킹’ 의혹사건과 관련해 자살한 국정원 직원 임모 과장이 남긴 유서의 시작 부분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하소연과 함께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마지막 대화다.

그리고 육군사관학교 생도인 딸에게도 전하는 말로 유서는 이어진다. “미안하다. 너는 나의 희망이었고 꿈이었다. 극단적인 아빠의 판단이 아버지로서 해서는 안되는 일인데… 훌륭하게 잘 자라줘라. 사랑해”
무엇이 이토록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영원한 이별을 선택하게 했는지 가슴이 아프다.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자식들을 둔 아버지로서 임 과장의 유서를 읽으려니 눈가가 젖어든다. 오죽했으면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죽음을 결심하고 마지막 글을 써내려갈 때 가슴 찢어질 듯 했을 그의 심정이 느껴진다.

그러나 잘못했다. 그토록 가족들을 사랑했다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살아야 했다. 임 과장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딸 등 가족들에게 가장 큰 아픔을 주고 말았다. 그것도 치유할 수 없는.

대한민국이 큰 일이다. 이른바 ‘정치적 자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완구 국무총리를 62일만에 사퇴시킨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 청와대 문건유출 및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과 관련해 최모 경위의 자살 등 정치적 사건이 있을 때마다 자살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건 아니다. 누군가의 죽음이 안타까운 일임에는 확실하지만 자살은 일종의 책임 회피다. 임 과장이나 성완종 회장·최모 경위와 노 전 대통령도 죽지 말고 진상을 밝혀야 했다. 억울하면 억울함을 알려야 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노 전 대통령의 잘못이 더욱 크다. 일국의 대통령을 했던 ‘어른’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자살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정적’들의 집요함과 ‘정치 검찰’에 대한 항의일 수도 있다. 수사과정에서 자신은 물론 가족에 대한 흠집내기로 모멸감이 밀려들기도 했을 것이다. 국가 권력 제1인자였던 자신에 대한 ‘사회적 매장’도 걱정됐을 것이다.

하지만 감내해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밝혀진다.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평가도 몇 년 지나지 않아 달라지고 있다. 속수무책으로 메르스에 구멍이 뚫려 국민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을 때 국가차원의 선제적 방역체계로 ‘사스’ 사망자 제로(0명)를 달성한 대통령 노무현이 그리워졌다. 자식과도 나누지 않는다는 권력을 지방으로 나눠주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던 노무현, 그래서 더러 욕을 먹기도 했던 그의 ‘열정’이 혜안이었고 선견지명이었음을 국민들은 새삼 알게 됐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에 대한 비판은 들어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과오가 어느 정도였는지, 그게 아니라 결백했다면 이명박 정부가 얼마나 집요하게 정적이라는 이유로 전직 대통령마저 못살게 구는지 국민들에게 알려야 했다. 그래서 그 같은 행태의 반복을 막을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게 전직 대통령이고, 특히 노무현인 만큼 국민들에 대한 울림을 컸을 것이다.

자살은 살인이다. 글자 그대로 자신을 죽이는 행위다.

자살은 배신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인 자신에 대한 배신이다. 그리고 남편으로, 가장으로 믿었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믿음을 져버리는 일이다.

자살은 정말 이기적인 선택이다. 혼자만의 도피다. 자살자에 대한 ‘공소권 없음’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그 사람은 갔더라도 그 사람의 행위로 인한 ‘상황’이 존재하는 만큼 끝까지 수사를 해서 경제적으로라도 책임을 물을 것이 있으면 물어야 한다.

상황이 어렵더라도 버텨야 한다. 자살을 선택하기까지 형언할 수 없을 고통이 있을 수 있었겠지만 남겨질 사람들의 고통도 생각해야 한다. 특히 인생의 마지막을 자신에 대한 살인이란 ‘범죄’로 마무리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