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가 남긴 것
제주는 ‘사실상 종식’ 선언
정부 무능력·소통 부족 등
‘세월호 참사’ 빼닮은 판박이
경제·정신적 손실 등 막대
과거에서 교훈 얻지 못하면
‘제2 메르스’ 계속 되풀이
제주자치도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와 관련 ‘사실상의 종식(終熄)’을 선언했다. 지난 17일 제주지역 마지막 모니터링 대상자가 자가격리에서 해제된데 따른 조치다. 하지만 정부가 공식적인 종식 선언을 하기 전까지는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철저한 방역체계 등은 당분간 유지할 방침이다.
정부도 WHO(세계보건기구)의 권고와는 별도로 ‘조기 종식’ 선언을 검토 중이다. 20일 0시를 기해 자가격리 대상자 53명의 격리조치가 전원 해제됐고, 추가 확진자도 이달 5일 이후 15일째 발생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 메르스대책본부에 의하면 20일 현재까지 총 확진자는 186명으로 이 가운데 36명이 사망했고 완치 퇴원자는 136명이다. 나머지 14명은 계속 치료 중이지만 대부분 메르스보다는 폐렴 등 다른 질병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보며 세월호 참사가 오버랩 되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지난해 4월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慘事)’는 우리사회 전반의 부조리를 고스란히 드러낸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꽃처럼 스러져간 어린 학생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국민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슬픔에 잠겼다. 진도 팽목항은 ‘통곡(痛哭)의 바다’로 변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를 불러일으킨 ‘안전 불감증’과 관련 국가개조(國家改造) 수준의 혁신을 이루겠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그러나 이후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는 올해 들어 곧바로 사상 초유의 ‘메르스 사태’로 이어졌다.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은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는 판박이처럼 꼭 닮았다. 초동대처 미흡과 이로 인한 우왕좌왕, 손발 안 맞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과민 반응 논란, 얼치기 전문가 난무 및 포퓰리즘이 만연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정부의 무능(無能)과 대국민 소통(疏通) 부족이 자리잡고 있었다. 불과 1년 전의 ‘세월호 교훈’을 조금이라도 가슴에 새기고 있었더라면 이처럼 어처구니 없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의 뉴올리언스를 덮쳤다. 다소 강력한 허리케인이긴 했지만 상륙한 이후에는 세기가 약해져 충분히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카트리나는 1800명 이상의 사망자와 1000억 달러가 넘는 재산 피해를 남기며 미국 역사상 최악(最惡)의 자연재해로 기록됐다. 원인은 여러 가지였으나 재난관리 시스템의 붕괴와 정부의 부실한 대처가 가장 큰 몫을 차지했다.
당시 의사이자 기자인 셰리 핑크는 왜 이런 재난(災難)으로 이어졌는지 심층적으로 취재했다. 특히 다른 병원보다 많은 희생자를 낸 메모리얼메디컬센터를 주목했다. 메르스에 관한한 우리로 치면 삼성서울병원으로, 그는 메모리얼병원에서의 5일을 재구성해 보도(후일 퓰리처상 수상)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재난, 그 이후’(원제 Five days at Memorial)란 제목의 책을 펴냈다.
셰리 핑크가 이 책에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대형 재해는 결국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재난의 패턴은 어느 나라든 거의 흡사하다. 사건이 발생하고 초동(初動) 대응을 잘못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그 누구도 컨트롤타워를 자처하지 않고, 결정권자들마저도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유언비어(流言蜚語)가 난무해 사회 전체가 공황 상태에 빠진다….”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15년의 메르스 사태를 겪은 우리에겐 결코 낯설지 않은 결론이 아닐 수 없다. 허나 세월호 참사 때의 그 굳센 각오와 다짐을 우리는 1년도 안돼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메르스 사태 역시 한 두달이 지나고 나면 우리의 뇌리에서 잊혀지고 사라질지 모른다.
우리의 정부나 국민 모두 이 같은 ‘심각한 망각증(忘却症)’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제2의 세월호나 메르스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과거의 교훈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미래 또한 없다는 것이 바로 ‘메르스 사태’가 남긴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