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듯 다른 생육방식…꽃피면 차이 확연
김대신 연구사의 제주식물이야기
⑭백합과의 다년생 식물 ‘박새’와 ‘참여로’
꽃이 피기 전까지는 무슨 식물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통 자라는 모습이나 눈으로 비교할 수 있는 잎이나 줄기의 모양이 비슷해서인 경우가 많은데, 곰취와 동의나물, 박새와 참여로, 그리고 새우란 종류처럼 아직 어린개체인 경우는 더욱 구분하기 힘들다.
한번 봐서 알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람도 오랜 시간을 두고 봐야 진면목을 알 수 있지 않는가.
한라산에 오르면, 진한 초록색에 넓은 타원형의 잎을 펼쳐내어 자라는 백합과(科)의 다년생 식물인 '박새'를 만날수 있다. 일각에서는 뿌리에서 나온 근생엽을 보고 박새를 '새우난초'로 오해하기도 한다. 두 식물모두 무리지어 분포하고, 넓적한 잎을 가진 식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자라는 모습이 닮아있다.
그러나 좀 더 시차를 두고 산행을 하다보면 그런 넓적한 잎 안쪽에서부터 줄기가 나오고 꽃이 피는 모습이 줄기 없이 꽃대만 형성되는 새우난초와는 전혀 다른 식물인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참새목에 속하는 박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텃새의 한 종류로 도심지에도 흔히 볼 수 있지만 수림의 우점조류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박새는 한라산을 다니다 보면 계곡이나 작은 지천을 따라 잎이 넓은 식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으로 자주 관찰된다. 물이 흐르는 개울의 가장자리에 흔히 무리지어 자라며 꽃이 피면 장관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들은 이와 유사하지만 조금은 다른 환경에서 자라는 식물을 만난 적이 있을 것인데, 이 식물을 '참여로 이'라고 한다.
박새와 참여로는 모두 백합과의 다년생 초본이며, 속명은 'Veratrum' 이다. 예언자인 verator 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다. 북유럽에서는 재채기 다음에 하는 말이 진실이라는 전설이 있으며, 이 속(屬) 식물들의 뿌리에는 재채기를 유발시키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이 속(屬)의 식물들은 대부분 독성식물로 이러한 특성을 이용한 경우들은 종종 접하게 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다양하게 활용하여 왔다. 오래전부터 박새와 참여로를 비롯한 여로종류들은 뿌리나 전초를 가공하여 살충제를 만들어 쓴 지역이 있으며, 약용식물로도 활용돼왔다.
박새는 줄기나 뿌리에 베라트린 등 같은 스테로이드성 알칼로이드 독성분이 있는 유독성 식물이다. 늘 강조하지만 야외에서 함부로 채취하거나 섭취하는 것은 주의를 요한다.
자세하게 관찰해 보면, 두 식물 모두 줄기의 아랫부분을 보면 잎 집이 썩어서 남은 망사 같은 섬유로 덮여 있는 공통점이 있어 더욱 구분하기 혼란스러워 진다. 도토리 키 재기 일 지 모르지만 야외에서 보면 참여로 보다는 박새가 조금은 더 커 보이며 풍성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두 종류의 차이는 꽃이 피우기 위한 꽃줄기가 형성되고 꽃이 필 때가 되면 비로소 명확해진다. 황백색 꽃들이 빼곡하게 피는 박새는 멀리서도 그 위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참여로는 박새보다는 시기적으로 조금 늦게 개화하는데, 붉은색의 작은 꽃들이 촘촘하게 달려 느낌이 확 다른 식물로 변해 버린다. 봄에는 거의 같은 종류로 혼동되었지만 초여름부터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 가을에는 다른 흔적을 남기게 된다.
이 두 종류는 모두 한라산 낙엽활엽수림대에 자라는 종류들이다.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박새는 저지대에서부터 구상나무숲까지 분포하고 있으며, 참여로는 해발 약 400m 정도의 곶자왈이나 오름에서부터 해발 약 1000m 정도까지 분포하는 차이가 있다.
같은 지역에 혼생해서 자라는 경우도 있지만, 비교적 박새는 물이 흐르거나 좀 더 과습한 지역에 자란다. 한라산에 형성된 크고 작은 계류와 습지 등이 주요 자생지가 된다. 반면. 참여로는 오름 사면이나 곶자왈에 자라 생태적으로 구분이 된다. 특히 곶자왈 지역처럼 토양 형성이 매우 빈약한 지역에는 박새의 분포보다는 참여로의 분포가 많은 것이 특징적이다.
국내의 분포를 살펴보면 박새는 비교적 전국에 걸쳐 분포하지만, 참여로는 제주도와 강원도 이북지역에만 분포하고 있어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국외의 분포를 보면 박새는 일본, 만주 사할린, 캄차카 등에 분포하며, 참여로는 만주, 중국, 아무르, 우스리 등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지역의 분포에서도 알 수 있지만 주로 온대이상의 지역에 자라는 식물로 볼 수 있다.
박새나 참여로의 한 해 동안 과정을 보면 이른 봄 작은 순에서 시작해 1m 이상 자라며 생육주기를 마감한다. 단순한 크기의 변화로 볼 수 도 있지만, 숨겨진 생태계의 공간을 보다 꽉 차게 해주며, 무엇보다 대규모 군락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아 특유의 숲속 경관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특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