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겨져가는 제주 방어유적 문화유산
도내 곳곳 방어유적 산재
조선시대 진·봉수·연대 등 구축
최근 관리 부실로 훼손 잇따라
엉뚱한 복원으로 예산 낭비
사유재산권 속박 사례도 빈발
소중한 유산 전승 노력 절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들어서면서 중앙정부는 제주섬에 국난을 대비해 방어시설을 만들기 시작한다. 읍성 3개소, 진 9개소, 봉수 25개소, 연대 38개소, 환해장성이 그것이다. 읍성은 행정중심의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읍치(邑治)에 만들어졌다.
진은 해안방어를 위해 애월, 명월, 차귀(고산), 모슬포, 서귀포, 수산, 별방(하도리), 조천, 화북에 설치하였다. 봉수는 해안과 가까운 오름에 만들어 지고, 연대(연변봉수)는 해안과 인접한 언덕에 봉수와 주변 연대가 보이는 곳에 만들어진다.
봉수는 오름정상부 혹은 사면에 흙을 쌓아 만들고, 연대는 주변 석재를 이용해 만든 것이다. 이러한 방어 시설물은 불과 연기로 서로 응대하며 교신한 것으로 판단되는데 연대사이의 거리는 4km이내, 봉수사이의 거리는 8km 이내로 비교적 가까운 편이다.
예를 들어 비양도 앞바다에 선박이 출몰하면 만조봉수(느지리오름)에서 먼저 확인된다. 다음에 가까운 곳에 위치한 배령연대(금능리)에서 적군인지 아군인지 구분한다. 적선이면 연대에서 봉수를 거쳐, 명월진으로 교신하고, 명월진의 조방장은 연대와 봉수로 제주읍성까지 연락하면, 제주목사의 조치가 내려진다. 그예는 하멜표류기의 표착관련 제주목사의 조치가 참고된다.
환해장성은 고려시대 삼별초, 대몽항쟁으로 만들기 시작해 조선시대 집중적으로 해안 곳곳에 주민들을 동원하여 쌓는다. 일설에는 만리장성에 빗대 흑룡만리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이러한 방어시설물은 1894년 봉수제가 폐지되면서 자연적, 인위적으로 폐허가 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부터 일부 문화재로 지정돼 현재는 3읍성, 5진, 23연대, 10개소의 환해장성만이 지정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다. 봉수는 아예 지정되지도 않았다.
최근 봉수는 오름정상부에 산책로, 전망대, 송신소, 레이더기지 등 개발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몸살을 앓고 있다. 환해장성은 해안도로와 양어장 등 개발에 의해 지속적으로 파괴되는 실정이다. 문화재로 지정됐다고는 하지만 관리도 엉망이다.
함덕연대는 대나무숲으로 변하고, 왜포연대(조천읍 신흥리)는 진입로조차 없다. 1990년 후반이후 많은 복원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사라봉수는 위치도 잘못되고 연대로 잘못 복원된 경우 등 허다하다. 환해장성은 바닷가 돌을 사용해야 하는데 산돌로 복원하거나 산성처럼 복원한 예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정확한 고증과 조사 없이 예산집행에만 치중한 결과로 분석된다.
예산은 예산대로 쓰고 복원 효과는 거두지 못하는 경우로 볼 수 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지정구역과 보호구역이 사유지인 경우가 상당수라는 점이다. 하루빨리 토지매입을 해야 될 것이다. 사유 재산권을 속박해서야 되겠는가.
최근 지정문화재 주변, 매장문화재에 대한 민원이 바람 잘 날이 없다. 일부 국가에서 보조는 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차후 중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세워 이러한 민원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 행정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실태조사와 보존, 활용계획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보고서들이 줄기차게 간행되고 있지만 실제 문제점에 대한 대안과 실행계획은 그리 구체적이지 않은 것 같다. 서귀포시인 경우 아예 실태 조사도 되어 있지 않다.
조선시대 제주도 해안을 둘러싼 방어 시스템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우리의 문화유산이면서 세계유산인 셈이다.
그만큼 역사적 가치가 높고 문화적 자산으로 보존해야 하는 당위성이 높다는 얘기다.
작금에 외부 자본으로 제주가 잠식되는 현실에서 우리 소중한 유산도 알게 모르게 멍들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가지고 있는 것도 지키지 못하고, 개발논리에 부딪혀 깨져가는 유산과 제주의 정신문화, 후세에 보여 줄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