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가봐야 할 간송미술관”

2015-07-12     서인희

문화독립운동가 간송 전형필
일제시절 문화재수호 앞장
소장품 대부분이 국보·보물급

간송컬렉션 높은 뜻과 의지
담력과 배포·세속적 욕심 초월
문화예술민족 자부심의 근거

지난달 중순 서울 한옥마을에 위치한 갤러리에서 작품전을 열었다. 보름정도 머물며 서울에 북촌의 이곳저곳을 둘러볼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작년 가을만 해도 사진을 찍기 힘들 정도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넘쳤던 골목길들이 메르스사태로 너무 한산했다. 멋진 풍경들을 ‘방해 없이’ 사진 속에 담아낼 수 있어서 나름대로 행복했지만 내국인까지 외출을 꺼려 전시장까지 조용했다.

시간 내서 꼭 한번 찾아가고 싶었던 ‘간송미술관’을 드디어 이번 기회에 다녀왔다. 성북동에 자리한 간송미술관은 한국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이자, 한국의 국보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미술관 중 하나다.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 선생이 평생 수집한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최대의 고서화 소장처로도 유명하다. 1971년 개관전시회 ‘겸재전’을 시작으로 매년 봄·가을 2회 소장품 전시회를 개최한다. 2006년에는 ‘간송 탄생 100주년 특별대전’을 열기도 했다. 당시 비장의 명품 100선을 공개했는데 ‘훈민정음 원본’서 신윤복의 ‘미인도’까지 대부분이 국보·보물급이었다.

간송은 1906년 종로의 땅부자였던 전영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작은 아버지 댁에 손이 없어 족보에 양자로 올랐는데 형·생부·의부 모두 일찍 죽어 양쪽 집 재산을 다 물려받아 25세에 청년갑부가 됐다.

그는 일제 치하에 우리 문화재의 가치를 알고 10만석 거부의 재산으로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듯 해외로 반출되는 작품들을 컬렉션하기 시작했다. 문화재 수호 밖에 없다는 일념으로 전국 각지에 사람을 풀어 골동품을 수집한 간송은 우리 문화재 지킴이 선각자이자 문화독립운동가였다.

일본의 우리민족문화 말살 정책 문화유산 약탈 자행으로 고려청자·신라불상·조선시대 서적 등 상당수가 일본으로 건너간 상태에 일제치하 나라 잃은 설움에 빠져있던 시절, 간송은 감상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의 귀한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전 재산을 쏟아 부었다. 우리 문화재에 대한 간송의 열정 덕에 국립중앙박물관 못지않은 최고의 컬렉션이 가능해졌다.

간송의 열정적 기질을 엿볼 수 있는 컬렉션의 일화들도 유명하다. 1936년 11월 경성미술구락부 골동품 경매에 많은 백자 명품들 중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청화백자양각진사철채난국초충문병(보물제241호)’이었다. 들국화는 진사와 철채로 그린 보기 드문 명품중의 명품이었다. 백자의 최고가가 2000원을 넘지 않던 시절 1만4580원에 치열한 경합 끝에 간송의 손에 들어왔다. 당시 군수 월급이 70원, 백자는 비싸야 2000원, 20칸 기와집 한 채가 2000원일 때였다.

고려청자의 대표작이자 세계적 명작으로 꼽히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제68호)’은 개성 근처에서 도굴된 이후 일본인의 손에 넘어갔다가 대구의 신창재라는 사람이 사들였다. 이때 값이 4000원, 그 후 다시 일본인 골동품상 마에다에게 넘어갔다. 이 소식을 들은 간송은 마에다의 요구에 두말 않고 2만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사들였다.

당시 일본인 수집가들은 놀라기도 했지만 자존심이 상했다고 한다. 조선총독부 박물관도 접촉했으나 엄청난 값 때문에 욕심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물건이었다. 이를 안 일본 굴지의 수집가 무라카미가 간송을 찾아가 4만원을 불렀다. 간송의 대답은 “이 청자보다 더 좋은 물건을 나에게 가져오면 이 매병을 원금에 드리지요” 무라카미는 더 이상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오늘날 간송의 높은 뜻과 굳은 의지로 이루어진 간송 컬렉션은 우리민족을 문화 예술의 민족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간송의 담력과 배포, 세속적 욕심을 초월한 민족정신과 문화 애호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간송의 컬렉션.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재산을 잃고 힘든 시기를 보내다가 미술관을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못한 채 1962년 급성 신우염으로 삶을 마감했다. 한 민족의 전통과 뿌리를 증거할 수 있는 살아있는 간송미술관, 꼭 한번 방문을 권하고 싶은 미술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