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파정치 탈피와 민주정치 선진화

2015-07-02     박상수

미국도 보스정치·금권정치 경험
대통령도 의원도 보스의 뜻대로
결국 타파하고 민주주의 꽃피워

우리나라 여전히 ‘패거리정치’
국민 안중 없고 계파수장이 최고
정치인·국민 의식개선이 해답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력하게 비판하는 ‘(국민에 대한) 배신의 정치’를 거론했다. 정치사상에 입각한 정치를 실현하는 정치의 선진국, 미국도 우리나라와 같은 정치를 이미 경험했다. 아브라함 링컨이 1865년 암살되면서 리더십이 결핍된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보스정치’, 소위 실업계와 정치권이 결탁하는 ‘금권정치’가 시작됐다.

보스가 정치자금을 독점자본가로부터 모금하고, 당선이 유력한 인사를 공천해 상원·하원에 진출시키고 또한 당선이 유력한 인사를 대통령 후보로 밀어준다. 보스가 지원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연방정부의 각 장관은 보스가 추천하는 인사로 채워지고 대통령은 허수아비가 된다. 만약 대통령이 이를 거부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장관을 임명하면, 보스는 상원과 하원의 자기 계파 의원들을 동원해 정부의 모든 계획이나 정책을 부결하게 만들어 버린다. 결국 대통령도 보스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보스정치는 보스에 의해서 정치가 좌지우지되며, 민주주의를 이용한 보스의 독재가 횡행하는 정치다. 의원이나 대통령 모두 보스의 의지대로 행동해야 하며, 이들은 보스의 의중을 파악하고 그대로 행동할 뿐만 아니라 보스의 눈치만 살피면 되고, 국민들은 그들의 안중에 없다.

보스는 대통령과 의원들을 당선시키기 위해 정치자금을 모금해야 하며, 정치자금의 모금에 협력한 독점자본가에게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1890년에 셔먼 반트러스트법이라는 반독점법이 제정됐으나, 이 법은 보스에 의한 금권정치에 의해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보스가 대통령과 의원들을 조종해 법 시행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당시 민주주의는 ‘상향식 민의 전달’이 아니라 ‘하향식 보스의 의견 전달’이었다. 물론 선거가 시행되고 있어서 부분적으로 민의가 전달되기는 했으나 진정한 의미의 민의의 전달과는 거리가 멀었다.

1901년 재선된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이 취임 6개월만에 암살되자 시어도어 루스벨트 부통령이 직을 승계하고 정치개혁운동인 ‘혁신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거의 50여년에 걸쳐서 보스정치를 타파하고, ‘클레이턴 반트러스트법’(1914년)을 통해 독점에 대한 규제 강화와 노동자 권익 향상 등이 이뤄졌다.

오늘날 미국의 민주주의는 보스정치의 타파에서 비롯됐다. 공화당과 민주당에는 보스정치의 핵심을 이룰 수 있는 중앙당이 존재하지 않고 각 정당 대표의 역할은 원내 총무가 수행함으로써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라는 정치사상을 확립하고 ‘아래로부터 위로’ 민의가 전달되는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있다.

우리나라도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존재했던 ‘3김 시대’가 청산되었지만, 그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계파정치가 아직도 잔존하고 있다. 강력한 계파의 의원들은 그 계파에 소속된 것을 자랑하기도 하며, 계파의 수장 혹은 그 대리인인 좌장의 뜻을 하늘처럼 떠받들고 있다.

국민이 뽑아준 국회의원은 국민들의 뜻을 하늘같이 떠받들어야 하는데 계파 수장의 뜻을 떠받들거나 아부하기에 급급하다. 정말로 한심한 국회의원들이다. 민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파소속으로 다음 선거에서 재공천만을 학수고대한다.

이런 상황에선 민의의 전달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으며, 오로지 계파 수장의 의중이 정치에 반영되고, 정치사상이 없는 ‘패거리 정치’만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나라 민주정치의 선진화를 위해 계파정치 탈피가 급선무다. 대통령제를 내각제로 바꾼다고 해결될 사안도 아니다. 각 정당의 구조 개선, 즉 민의가 ‘아래로부터 위로’ 전달될 수 있는 구조로의 개편 혹은 국회의원 후보의 상향식 공천의 정착화, 국회의원들의 사고방식의 건전화, 그리고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계파 정치인들을 몰아낼 수 있는 국민들의 의식수준의 개선만이 그 해답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