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에 부쳐

2015-07-01     김은석

박 대통령 ‘스마트 관광섬’ 구상 피력
정부의 톱다운 방식으론 안돼
밑에서 발상을 전환 움직여야

필요한 것은 ‘통합’ 아닌 ‘융합’
다른 것들 모아 새롭게 녹여내기
세계적 공통의 가치 창조 중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참석, 정보통신기술을 문화와 관광에 접목시켜 제주도를 세계 최고의 ‘스마트 관광섬’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정말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정부의 ‘톱다운(top down)’ 방식만으로는 세계 최고의 스마트 관광섬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다. 지난 정부 때 ‘한국판 해리 포터’를 만들겠다며 야단법석 떨면서 각종 콘텐츠 개발과 스토리텔링 사업에 적지 않은 예산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정작 세계적인 콘텐츠로 주목받는 작품들이 탄생했다는 말은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들의 혈세만 낭비한 셈이다.

그렇다면 세계 최고의 ‘스마트 관광섬’이 장밋빛 수사가 아닌 실현 가능한 구체적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선결 조건들이 있어야 한다. 우선 밑에서부터 움직이는 것이다. 그 중에서 도민의 인식 변화, 특히 문화와 관광, 정보통신기술 관련자들의 발상 전환이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서로 개성들이 강한 제주의 문화와 관광, 그리고 정보통신기술 분야를 한 곳에 모아 놓고 있다. 따라서 성패는 이들을 얼마나 조화롭게 창조적 역량을 극대화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벽을 허물어야 한다. 오늘날 학문을 칸막이로 나누어  보던 시절은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주에는 칸막이들이 놓여 있다. 그것은 기득권 구조가 곳곳에 뿌리내려 있기 때문이다.

동료 교수들이 제주도에서 공부하는 것이 참 어렵다고 탄식한다. 이유인 즉, 제주학은 제주사람이 해야 하고, 여성학은 여성이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한다. 인문학은 인문학자가 가르쳐야 하고, 예술 분야의 일은 오직 예술인이 해야만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닫힌 환경 속에서는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공통의 가치를 창조할 수가 없다. 그들만의 잔치로 끝날 뿐이다. 베토벤의 음악이 소중한 자산이 된 것은 독일인에게만 호소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보편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공통의 가치를 창조하지 못하는 ‘스마트 관광섬’에 세계인이 주목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착각이다.

오늘날은 융합의 시대다. 예를 들면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문제는 의사만의 몫이 아닌 시대이다. 메르스 문제는 이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오늘날 환경문제도 생태학은 물론 경제학·생물학·기상학, 심지어 윤리학과 교육학 분야의 지식까지 요구된다. 인간의 윤리의식과 행동이 바꿔지지 않는 한 우리의 당면과제에 대한 그 어떠한 묘안도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창조경제혁신센터가 가야야 할 방향은 이처럼 분명하다.

그런데 정보통신기술에 문화와 관광을 접목시킨다고 해서 ‘스마트 관광섬’이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 되돌아보면 그동안 각종 국가 재난 때 관련 부처들을 모아 놓았지만 각자의 목소리들만 높이는 바람에 우리들의 분통만 터트리게 했다. 모으긴 모았는데 그 방식이 달라야 한다.

딱히 구분하자면 ‘통합’은 이질적인 것들을 그냥 한 곳에 모아 놓는 것이라면 ‘융합’은 그것들은 모아놓고, 이를 녹여 새롭게 내놓는 것이다. 융합에는 새 생명이 태어나지만 통합에는 오히려 케케묵은 갈등과 다툼이 드러나게 된다.

창조경제혁신센터가 필요로 하는 것은 융합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갑론을박하면서 예산만 낭비했던 전철을 밟을 따름이다. 오늘날 비빔밥은 세계인들이 즐겨 찾는 음식이다. 거기에는 각종 나물·참기름·고추장 등 여러 개성이 강한 식재료들이 모여 비빔밥 특유의 맛을 내기 때문이다.

사실 냉정히 따져보자, 문화와 관광에 있어서 잠재력을 갖춘 곳이 어디 제주도 뿐이겠는가? 그렇다면 치열한 세계 무대에서 진정 세계 최고의 맛을 내려면,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영역 간 문을 열지 않은 채 제 목소리만 내는 닫힌 곳이 아니라 융합의 새로운 장을 만들어내는 열린 곳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이 강조한 ‘세계최고의 스마트 관광섬’의 선결 조건이고 우리가 원하는 창조경제혁신센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