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전투 가족생각으로 버텨”
제65주년 6·25기념일…김태심 참전용사를 만나다
일본에 있는 형·동생 대신 가족 지키기 위해 입대
화령산 전투·884고지·424고지 쟁탈전 등 활약
“치열한 전투의 나날 속에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나를 싸우게 했습니다.”
제65주년 6·25전쟁 기념일을 하루 앞둔 24일, 제주시 이도2동 6·25참전유공자회관에서 참전용사 김태심(84) 씨를 만났다.
제주시 삼양동 출신인 김씨는 6·25전쟁이 발발한 해인 1950년 7월, 17세 고등학생 때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했다. 전쟁이 터지자 학교에서는 군사훈련과 공부를 병행했다.
김씨는 “제주도가 섬이다보니 처음에는 부락 주민들 사이에서 별다른 공포감은 크지 않았지만, 적군이 서울을 빼앗고 점점 남쪽으로 내려오자 다들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며 “일본에 있는 형과 동생 대신 내가 가족들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입대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7월 중순 경북 상주로 배치돼 ‘화령산전투’를 처음 치렀다.
김씨는 “보이는 것은 날아다니는 수류탄과 부상자, 그리고 적군 뿐”이라며 “적군이 낙동강 밑으로 내려오면 최악의 상황에 처해질 수 있어 전우들 모두 이를 악물고 전투에 임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1950년 9월 연합군의 인천 상륙작전 성공으로 서울을 탈환한 후, 김씨는 884고지(강원 향로봉), 424고지(경기 천계산) 등 고지쟁탈전에 투입됐다.
김씨는 “치열한 전투의 나날이었다. 동료들은 매일 죽어나갔고, 중공군의 개입으로 적군의 세력은 거대해졌다”며 “공포, 애국심, 그리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나를 싸우게 했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제대해 귀향했다.
김씨는 “가족들 모두 내가 전사한 줄 알았다”며 “집으로 왔을 때 어머니와 할어버지께서 많이 우셨고 나도 따라 울었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참전 공로를 인정받아 6·25참전 기장, 호국영웅장 등 각종 공로훈장을 받았다.
그는 “요즘도 같이 싸웠던 전우들을 만나 무용담으로 이야기 꽃을 피운다”며 “6·25전쟁에 참전했던 것은 내 생애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요즘 아이들은 6·25전쟁이 북침인지, 남침인지 조차 모른다”며 “우리나라의 역사, 특히 가장 가슴 아팠던 시기를 망각한다면 앞으로의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역사·안보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