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동 대궐터 추가 발굴조사 필요”

학술대회서 김일우 소장 “역사적 성격 규명 역부족” 주장

2015-06-10     고권봉 기자

“이번 발굴조사 성과는 송정규 제주목사가 편찬한 ‘해외문견록’에서 강정동 대궐터를 몽골 황제 순제의 피난궁전터로 보는 견해에 힘을 보태고 있다.”

서귀포시가 10일 시청 2청사 4층 1강의실에서 ‘강정동 대궐터 유적 발굴조사 완료에 따른 학술대회’를 개최한 가운데 김일우 제주역사문화나눔연구소장은 ‘강정동 대궐터 유적의 역사적 고찰과 논의’를 주제로 한 발표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김일우 소장은 “숙종 30년(1704)~숙종 32년(1706) 제주목사를 지낸 송정규 목사가 편찬한 ‘홰외문견록’을 보면 강정동 대궐터의 궁실이 언제 것인지를 알 수 없으나 그것이 제주 사람과는 관계가 없다고 봤다”며 “따라서 이곳이 몽골 황제 순제의 피난궁전터이며 그 건물지가 14세기에 이용됐다는 것인데 이는 강정동 대궐터 건물지의 사용시기가 14~15세기에 걸친다는 발굴조사 성과와도 맞아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 소장은 “원형주좌 주초석의 발굴은 하원동 법화사에서 사용된 초석과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고려시대 법화사는 몽골에 의해 중창이 주도됐던 만큼 강정동 대궐터의 건물지도 몽골족과 관계를 갖는 시설물이 있었던 곳으로 볼 수 있다”고 피력했다.

이를 통해 그는 “이 조사는 강정동 대궐터에 해당하는 지역 가운데 극히 일부에 걸쳐 시행됐지만 이곳의 역사적 성격을 밝히는데 매우 주요하고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며 “그럼에도 이번 발굴 조사 성과만으로는 강정동 대궐터의 역사적 성격을 규명하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점은 발굴조사 대상유적이 1415㎡에 국한됐기 때문”이라며 주변지역 추가 발굴 조사 필요성을 언급했다.

주제 발표에 이어 진행된 박찬식 (재)제주문화유산연구원장이 좌장을 맡은 토론회에서도 추가 발굴 조사 필요성은 또다시 제기됐다.

이청규 영남대 교수는 “이번 발굴조사는 극히 일부만 주변부로 생각되는 발굴지에서 진행돼 더 주력해야 한다”며 “법화사도 13세기 것도 많이 나왔기 때문에 이곳도 14~15세기 전에 어떤 방식으로 든 건물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성명 국립제주박물관장은 “건물 규모로 봤을 때 이것이 관아 건물인지, 사찰인지, 민가인지 성격을 규명할 단서가 없다”며 “서귀포시에서 조사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모르지만 주변 땅을 매입해 추가적인 정밀조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동전 제주대 교수는 “법화사 발굴과 하원동 왕자묘 발굴을 할 때 부분적으로 참여한 경험으로 비춰보면 송정규 목사의 해외문견록을 잘 뜯어봐야 한다”며 “이것으로 단정 짓기에는 풀어야 할 몇 가지 과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