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력 뛰어나 곶자왈·계곡 어디든 존재

김대신 연구사의 제주식물이야기
⑫땅을 향한 고요한 외침 '때죽나무'

2015-06-07     제주매일

하늘이 아닌 땅을 향해 피는 꽃들이 있다. 이렇게 땅을 향해서 꽃을 피우는 식물 중에는 그 모양이 종처럼 보여 제주방언으로 “종낭”이라고 불리는 때죽나무가 있다. 식물의 입장에서는 개화시기나 수분방식 등에 차이가 있을 수도 있어 나름대로 유리한 방식을 택하여 변화를 거듭해 왔을 것이지만, 바라보며 느끼는 사람의 입장에선 또 다른 꽃의 세계를 보는 듯 해 더 없이 즐거워진다.

 

■뛰어난 적응력은 큰 장점
때죽나무과의 한 종류인 때죽나무는 아래를 향해 꽃을 피운다. 솔직히 때죽나무라는 이름보다는 앞서 말한 “종낭” 이라는 이름이 더 사실적이고 정감이 가는 이름이다. 서양에서도 때죽나무의 흰꽃에서 종(鍾)을 연상했는지 스노우벨(snowbell)이라 표기한다. 식물의 이름이 용도나 모양 색깔 등 보여지는 대로 붙여지고 불러지는 것이 그 식물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생긴대로 잘 만든 이름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종낭”의 이름으로 다른 식물을 빗대어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들판에 피는 잔대나 계곡에 피는 모싯대의 꽃은 분명 종꽃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꽃을 하늘을 향해 피는 것과 아래를 향해 피우는 것 중 어느 것이 유리하다고 단정할 수 는 없다.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화시기에 따라 꽃이 먼저 피는 경우는 하늘을 향하든 밑을 향하든 큰 상관이 없지만, 잎이 다 나고 꽃이 피는 식물들은 아무래도 하늘위로 꽃을 피우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하늘을 향해 피우면 아무래도 수분에도 유리할 수 있고 수분매개체에 대한 노출이나 유출입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을 수 있다. 반면 꽃이 땅을 향해 피면 불리한 점이 많을 것으로 보이지만 비가 많은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면도 많다. 하늘을 향해 피면 비가 올 때 꽃이 다 젖어버리거나 물이 고일수도 있지만 아래를 향해 피는 꽃은 그런 불상사는 피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면에서 장마를 전후해서 피는 때죽나무는 환경에 잘 적응한 꽃이라 볼 수 있다. 비가 오고 잠시 맑은 하늘에 어떤 꽃보다 먼저 가루받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때죽나무가 대표적인 밀원식물의 하나로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숲을 다니다 보면 때죽나무가 많이 보인다. 특히 제주도의 낮은 지역에 형성된 2차림에서는 때죽나무가 우점종으로 그 지위를 얻는 경우도 많다.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때죽나무는 참나무종류나 느티나무처럼 그다지 용도가 많은 나무는 아니기 때문에 지금의 숲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살아남게 된 이유도 있으며, 많은 열매를 생산한다는 점과 곶자왈이든 계곡이든 뛰어난 적응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이유가 될 것이다.

때죽나무처럼 생체기가 많은 나무도 드물 것이다. 나무 밑동에서부터 여러 가닥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기본이며, 회초리만한 맹아들을 수십가닥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는 사람이나 동물에 의한 간섭의 결과로 만들어진 흔적들이다. 땔감을 위해서 잘려나가거나 겨울동안 숲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소나 말에 의해 박피가 되어 다시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몸부림의 결과물인 것이다.

 

■때죽나무 사촌지간인 쪽동백나무
때죽나무와 사촌지간인 나무로 쪽동백나무가 있다. 때죽나무만큼이나 유명한 나무인데 잎의 모양에서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쪽동백나무는 아주 둥글고 큰 잎을 가지고 있으며 때죽나무는 자그마한 타원형의 잎을 달고 있다. 특히 꽃은 두 종류가 모두 밑을 향해 피지만 때죽나무는 잎의 겨드랑이에서 꽃대가 나오는 반면, 쪽동백나무는 새가지 끝에서 꽃대가 나와 차이를 보인다. 그렇지만 열매의 모습을 본다면 두 종류가 왜 사촌지간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닮아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쪽동백나무의 제주지역 분포는 때죽나무보다는 좀 제한되는데, 주로 낙엽활엽수림대에 자라면 교래곶자왈 등에서도 간혹 만날 수 있다. 지금은 우리 제주지역에도 간혹 일부 가로수로도 심어져 있어 쪽동백나무도 더 이상 낮선 식물만은 아니다.

이 아름다운 식물에 날벼락 같은 얘기일지 모르지만, 때죽나무는 독성분을 함유한 식물이다. 열매와 잎에는 에고사포닌(egosaponin)이라는 마취성분이 들어 있다. 이름의 유래 역시 열매를 찧어 냇물에 풀면 물고기들이 떼로 죽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반면 쪽동백나무는 아직까지 독성분이 보고된 적은 없다. 독성분도 소량인 경우는 약으로 취급되기도 하지만, 꼭 필요한 용도가 아니면 야외에서는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때죽나무는 너무 흔해서 좀 식상하게 볼 수 있는 나무이다. 곶자왈이든 상록활엽수림이든 낙엽활엽수림이든 우리가 활동하고 즐기는 숲에서 흔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흔한 만큼 자신의 역할도 다 하는 식물인 것은 분명하다. 대표적인 밀원식물이면서 한번쯤은 카메라 셔터를 들이밀게 될 정도로 아름다우며, 현재의 제주식생에서 볼 때도 숲을 구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다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주말에는 살랑살랑 이는 봄바람결에 하얀 예쁜 꽃종 들이 흔들리면, 향긋한 연한 레몬향이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때죽나무가 기다리는 숲에서 가벼운 산책을 하며 5월을 떠나보내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