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농업발전에 앞장…“힘 닿을 때까지 계속”
부농의 꿈이 영글다
(10)이성중 성중농장 대표
시설에서 재배해 여름에 맛볼 수 있는 하우스 감귤의 제철이 성큼 다가왔다.
하우스 감귤은 노지 감귤의 재배 면적이 늘어나면서 생산량이 급증, 가격 하락 등의 우려로 시설 가온을 통해 출하 시기를 조절, 이르면 5월부터 10월까지 출하된다.
지난해 제주지역 하우스 감귤 농가는 2만1500t의 감귤을 생산해 607억원의 조수입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는 최근 올해 하우스 감귤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2% 늘어난 2만2015t으로 분석한 결과를 내놨다. 단위면적당 과수가 지난해와 비슷하지만 재배 면적이 2%(261㏊) 늘어난 것으로 풀이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이달에 출하되는 하우스 감귤 품질의 경우 기상 여건이 좋아 지난해보다 양호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달 하우스감귤 출하량도 지난해보다 1.9% 늘어난 563t으로 보고 있다.
▲하우스 감귤 최초 유기농 재배 성공
노지 감귤에 비해 속껍질이 얇아서 부드럽고 과즙이 많아 소비자의 사랑을 듬뿍 받는 하우스 감귤.
이런 하우스 감귤에 친환경 농법을 도입해 4년 전 지역 최초로 유기농 재배에 성공한 농가가 있다.
그 주인공은 서귀포시 보목동에서 하우스 감귤 농장 등 영농규모 시설 1만5000㎡(약 5000평)를 재배해 연간 조수입 3억원을 올리는 이성중(66) 성중농장 대표.
이성중 대표는 남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병역 의무를 다한 후 1970년부터 농사일을 시작해 45년째 농업에 종사하는 모범 농부다.
2001년부터 친환경 농업을 시작해 유기 인증을 받았으며 친환경 및 저농약 감귤 생산 추구, 전기 가온시스템 도입 등으로 고품질 감귤 생산과 연중생산 방법으로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고 있다.
이성중 대표는 “제가 처음에 감귤 농사를 할 때만 해도 감귤나무는 대학나무로 불리며 귀한 대접을 받았지만 저는 의식주를 해결하기에 바빴다”며 “그러다가 시설 재배로 눈을 돌렸고, 손에 남는 돈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재배 면적이 늘어난 지금에 이르게 됐다”는 소회를 밝혔다.
특히 이 대표는 “농약 등 각종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음식재료가 학교 급식에 공급될 수 있도록 유기농 재배 교육을 이수하는 등 친환경 농업발전에 앞장서 왔다”며 “유기농 재배가 일반 재배에 비해 2~3배 더 힘이 들지만 힘이 닿는 한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농사일 30년 5000평 시설하우스 갖춰
지난 27일 서귀포시 보목동 성중농장에서 이성중 대표(한국유기농협회 제주지부 부지부장)를 만났다.
이 대표는 자신 인생의 첫 농장인 이곳에서 45년 감귤 인생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말끔한 옷을 차려 입고 농장 곳곳을 보여줬다.
그는 “1970년 22살 때 다른 지역에서 탱자나무를 사와 1000평을 임대해서 밀감 묘목 1만그루를 심었다”며 “밀감 묘목 1만본이면 1000만원 정도 했다. 그 당시 이곳(보목동) 땅이 한 평당 200원, 위미쪽은 50원 정도 했을 때”라고 말했다.
이어 “제 아버지는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밭에서 보리와 조, 고구마를 지으셨고,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저는 가족의 생계에 도움을 주기 위해 밀감 묘목을 키웠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대표는 묘목을 심고 5년을 기다린 후 수확을 할 수 있었다.
이때 묘목이 대량으로 공급되기 시작했으며, 제주도에 묘목을 납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아직도 의식주를 해결하기에도 벅찼다.
이 때문에 이 대표는 많지 않은 땅에서 수익을 발생시키기 위해 시설하우스 재배법으로 변경했다. 1000평 규모의 시설하우스에서 많지는 않았지만 수익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87년 상황이 바뀌었다.
제주 지역에 ‘귀한 과일’ 바나나 재배로 수익이 많이 늘어났다는 주위의 말에 곧바로 밀감 나무를 전부 다 베고 그곳에 바나나를 심었다.
바나나를 심으면서 아버지와 분가를 했다.
이 대표는 “그때는 밀감 수확을 통해 1000만원 단위 수익은 상상도 못 할 때”라며 “하지만 그 당시 3년 동안 약 2억원 정도의 수익을 봤다”며 “하지만 곧바로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 소식에 곧바로 밀감 묘목을 구해 다시 귤 농사를 지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리고 8년 후인 1998년 3000평의 감귤 시설하우스 농장과 1000평의 한라봉 시설하우스 농장을 샀다”며 “농사를 지은 지 30년 만에 5000평의 시설 하우스를 갖추게 됐다”고 고생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친환경 농업
칠순을 앞둔 그는 3남 1녀의 자녀 모두를 출가시켰으며, 손주의 재롱을 보며 여유 있는 노년을 보내고 있지만, 여전히 5000평 규모의 농장에서 한시도 쉬지 않고 영농에 나서고 있다.
그 이유는 아직도 빚이 수억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 농업 발전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그였지만 병충해가 발생해 나름대로 방법으로 방제에 나섰지만 오히려 병해를 입었다. 2005년 3000평 하우스에서 생산된 모든 감귤을 비상품으로 판매했다. 조수입이 2억5000만원 정도 발생해야 정상인데 인건비, 농약 값도 못 건졌다.
이후 한국유기농업협회에 가입해 8차례에 걸쳐 연수교육을 받고, 친환경농업부문 새농민상을 받는 등 친환경 농업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친환경 농업인으로 변모했다.
이런 기쁨도 잠시.
3년 전 3000평 감귤 하우스 농장에서 온풍기 화재가 발생해 전부 잃었다.
이 대표는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가슴이 미어져 온다. 감귤 수확을 하지 못한 것은 물론 자재까지 타버려 2~3억원 정도 피해를 봤다”며 “그래서 그때 시설비 2억5000만원을 들여 유류 온풍기 시설에서 전기 온풍기 시설로 변경했다. 40년 일을 했는데 이때 다시 빚이 생겨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동안 아내(한정희·67)와 함께 고생고생하면서 1000평 하우스를 5000평으로 늘려서 이제부터는 ‘돈만 벌면서 살 수 있겠구나’ 했는데 농사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며 “빚을 청산하고 재산이 늘어나야 하는 데 빚이 오히려 늘어났으니 힘들기는 하다. 하지만 자녀를 출가시켜 크게 돈 들어가는 일이 없어 한 해 한 해 갚으며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웃어 보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아내가 40여 년간 없는 집에 시집을 와 고생만 했다. 그동안 호강시켜주지 못한 것이 정말 미안하다”며 “농장을 더 키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 가꾸는 것만 하면서 함께 여행을 다니려고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