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 삶에 필수적…그러나 ‘변질’ 양상
길호동의 차이나스토리
< 10 >중국인들의 선물 이야기
중국 큰 도시에는 중추절이나 춘지에와 같은 절기가 막 지나고 나면 거리에 ‘떴다방’들과 같은 노점상들이 생긴다. 주고받았던 선물들을 구입가보다 되파는 임시 상점이다. 늘 선물 수요가 많은 중국 사회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 돈 잘 버는 새로운 직종이다.
한국에서는 배갈이라고 불려지는 고급 백주(白酒)와 고가 담배를 기본으로 하여 푸얼차(普洱茶)와 같은 각종 차(茶)류에 동충하초며 말린 해삼이나 전복 같은 건강식품에다가 고가의 명품까지 이곳에서 거래되는 물건은 정말 다양하다. 최근에는 한철 반짝하는 임시 노점에서 진화하여 도시 곳곳에 상설 점포를 차려 영업을 하는 곳이 늘었다. 그만큼 선물은 중국인들의 삶에 필수적이다.
가을 중추절은 대개 비슷한 시기인 10월1일 국경절과 함께 선물의 계절을 시작하는 절기다. 그 뒤로는 성탄절로 이어지고 춘지에때 정점을 찍는다. 풍성해진 생활은 과거에는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던 단오며 정월 대보름날까지 선물보따리를 든 사람들이 행렬을 이루게 한다. 명절들은 중국인들이 자연스럽게 선물을 주고받는 날이 됐고 이도 모자라 성탄절과 같은 서양의 종교 기념일까지도 선물 하는 날이 되고 있다.
물질과 구매력이 넘치는 현재의 중국인들이 무엇을 선물하는지는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겠지만, 지금의 선물 문화로 오기까지 특별한 시대에서는 어떠했는지 살펴 보면 흥미롭다. 1950~60년대 시절은 형편들이 모두 그러하니 당시 배급 사회의 배경을 반영한 특색으로 양곡이나 옷감 배급표가 아주 귀한 선물이었다. 1960~70년대 문화대혁명 때는 단연 시대의 배경을 가진 특색 있는 선물이 대세였다. 대부분 마오의 어록집이나 그의 얼굴이 새겨진 배지, 홍위병을 접견하는 사진 액자나 마오선집과 같은 것들은 결혼식과 같이 특별한 때에 주고받았던 고급한 선물이었다. 개혁개방이 있기 직전에는 술과 담배가 보통 선물로 등장했고 계란은 병문안이나 출산․군입대 같은 일상의 큰 일에서 마음을 전하는 으뜸 선물이었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가지게 되는 다소의 물질적 여유는 사탕이나 고기․과일 통조림과 같은 선물로 다양화된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 가장 보편적인 선물이었던 술과 담배는 어느 공장 것인지 브랜드를 따지기 시작했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대상의 등급에 따라 선물들은 커지고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1990년대 사회는 더 풍성해지고 선물의 세계는 더욱 다채로워지고 2000년대 이후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게 된 후의 선물은 이웃 나라 사람들의 모습과 별 다를 것이 없어졌다.
중국인들의 명절은 특별한 선물 문화를 가진다. 중추절의 위에빙(月餠)이나 단오절의 쫑즈(粽子)는 중국인들이 명절에 거르지 않고 먹는 음식으로, 때만 되면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 고정 선물이 됐다. 그런데 세월과 함께 변종된 위에빙 이야기는 중국 선물 문화의 한 단면을 쉽사리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처음에는 순수한 먹거리 선물이었지만 점차 초호화 포장과 고급 식자재를 사용해 몇 만원에서 몇 십만원 짜리 위에빙을 만들어내더니 급기야는 주객이 전도되는 위에빙도 등장하게 된다. 인삼․전복․동충하초․양주․백주․담배․와인 등은 기본이고 믿어지지 않겠지만 아파트까지도 증정품으로 하는 위에빙이 등장한 경우도 있었다.
이쯤 되면 순수한 선물의 경계를 확실히 넘어선 것이니 정부가 나서 증정품의 한도와 과도한 포장에 관한 단속 규정을 만든다. 정부의 정책이 있으면 민간에서는 곧바로 대응책을 만든다는 것이 중국인들이니, 곧바로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위에빙을 출현시킨다. 중추절이 없어지지 않는 한, 기상천외한 형태의 위에빙은 계속 등장할 것 같고 정부의 간섭도 계속될 모양이다. 중국인들은 선물로 즐겨 주고받는 수십만원 짜리 고급 백주에 대해서 “보통 사람들이 마실 수 없는 술, 사는 사람은 마시지 않는 술, 마실 사람은 절대 사지 않는 술”이라고 이야기한다.
중국의 소설이나 영화며 드라마에서는 청탁과 비리를 열어가는 도구로써, 선물일수도 있고 뇌물이랄 수도 있는 장면을 설정하여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 하나의 패턴이다. 사회 속에서 ‘과도한 선물’이 하나의 문화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는 어려웠던 시절 소수가 자원을 독점하고 배분하는 과정에서, 권력은 쉽게 청탁의 기회를 갖게 되었고 이런 것들이 사회 속에서 관습화됐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사회가 급속히 성장하고 변화해 가는 과정에서의 여러 유리한 기회를 과독점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부탁의 ‘예’를 갖추는 표현이 묵직한 ‘예물’로 나타나는 사회 현상이 됐다. 실제 생활하고 일하는 현장에서 중국인들의 독특한 선물 문화 분위기는 늘 감지되는데 정말 복잡하고 미묘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선물 문화는 중국 사회의 인간관계가 매우 실리적이면서도 등급 관계가 분명해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중국인들 자신들이 이야기하는, 인정을 전하는 순수한 선물이 아닌 부정의 이면을 가지고 있는 소위 ‘중국식 선물’에 대한 정의다. ‘선물은 상대방의 권한을 인정하고 수수에 대한 의무를 강요하는 암묵을 지니고 있다. 사회 관계망 속에서 이뤄지는 특별한 교환으로서, 참여하는 사람들 간에는 주어야 하고 받아야 하며 갚아야 하는 의무의 관계가 성립된다.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관계를 돈독히 하며 인정상 부채감을 주려고 하는 것, 이것이 중국식 선물이다.’
그리고 중국식 선물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명품이다.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부패 척결 관련 보도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도 명품이다. 어느 지방 무슨 관리의 사무실이나 집에서 명품 가방과 시계를 수십 점에서 수백 점 압수했다는 보도를 심심치 않게 접한다.
중국식 선물은 세계 명품 시장 판도까지 바뀌어 놓는 듯하다. 중국인들의 명품 사랑이야기는 이제 화제도 아닐 만큼 보편적이다. 대다수 명품 구입의 동기가 선물에 기인한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고 중국에 진출한 명품 기업들은 마케팅의 초점을 명확하게 중국인들의 선물 문화에 맞추고 있다.
명품 브랜드들이 오랫동안 짝퉁들로 고생하다가 어쩌면 오히려 이제 그 덕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짝퉁은 버리고 진짜 명품들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의 소비자들이 마구 늘어나고 있으니 정말 인고 끝에 대박을 보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해외여행은 중국인들에게 명품 또는 여행국가의 특화 제품이나 특산품도 구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주위 친지들에게 선물해야 할 부담도 의무감도 갖게 하며 자연스럽게 목적을 향한 선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래서 해외를 여행하는 중국인들의 쇼핑은 늘 선물과 관계가 깊다.
한국은 명품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다행히도 화장품에 옷가지들과 밥통까지 중국인들에게 팔만한 물건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제주 특산품의 우수한 품질은 누구나 공인하는 터이지만 더 유명해지지 못하고 더 많이 팔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제주 먹거리들이 선물 좋아하는 중국인들한테는 딱 맞춤인데 말이다. 닉슨과 마오타이처럼 스토리텔링 하나 잘 만들어낼 수 있는 이벤트가 있다면 정말 대박일 것이다. <전 이노션월드와이드 중국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