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의 신뢰성

2005-06-06     김덕남 대기자

평화는 믿음과 이해 위에 세워져야

지금 제주에서는 ‘평화’의 담론으로 뜨겁다.
화순항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한 찬ㆍ반 양론이 엮어내는 담론이다.
해군 등 추진 주체나 찬성론자들은 “힘이 있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힘의 논리로서의 평화를 말하고 있고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쪽은 ‘탐욕에 대항하는 도덕적 신념과 가치로서의 평화가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 평화의 섬 제주’라는 동일한 컨셉인데도 해석의 색깔은 이처럼 딴 판이다.
사실 ‘세계 평화의 섬 제주’에서의 평화는 전쟁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평화일 수가 없다.
1945년 8월, 일본 항복 조인식에서 있었던 ‘Dㆍ맥아더' 장군의 연설처럼 ‘세계 평화의 섬 제주’의 평화는 “믿음과 이해의 기초 위에 세워지는 세계이며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자유와 인내와 정의에 대한 소망이 달성되기 위해 세워지는 세계다”.

힘의 논리는 전쟁 불러들이는 빌미

그렇다면 “평화의 섬을 지키기 위해 해군기지 건설이 필요하다”는 해군 측 논거는 ‘파괴적 자기방어 논리’나 다름없다. 자기방어를 한다는 것이 오히려 자기 파괴적이 되는 역설적 상황을 말함이다.
힘으로 평화를 지킨다는 힘의 논리가 되레 전쟁을 불러들이는 빌미가 될 수도 있을 것이기에 하는 소리다.
제주도에 해군 기동함대 작전기지를 설치하겠다는 것은 어떤 유사시(有事時)를 상정한 것이 아니던가. 그것은 바로 전쟁 상황 등 비상한 사태를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상의 군비 증강에 다름 아닌 이 같은 군사시설이 어떻게 ‘세계 평화의 섬 제주’의 이미지와 부합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평화의 섬을 지키기 위해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는 해군 측의 논리적 모순은 여기서 비롯된다.
이 같은 논리적 모순에 시비 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문제는 있다. 해군기지 건설 추진과 관련한 해군 측의 말이나 행동거지가 신뢰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해도 추진 강행"발언 파문

최근 화순항 해군기지 건설 계획에 대한 도민 토론회에서 보여준 해군 측의 경직성이 그렇다.
여기에서 해군 측은 “화순항 해군기지 건설은 반대가 있더라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도민이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겠다”던 당초의 약속을 뒤집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해군 측의 토론회 참가는 위장 전술이었다는 말인가.
해군기지는 해안매립 등 십 수만여 평에 장병 등 7500여명이 상주하게 되는 군사도시 형 대형 프로젝트다.

당연히 자연 및 인문겭英?환경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대형 공사에 따른 해양 생태계 파괴나 자연경관 훼손ㆍ통제구역 강화로 인한 출입제한ㆍ재산권 행사 제약ㆍ조업권제약 등 관내 주민들의 생존권이나 삶의 질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미국의 MD(미사일 방어)체계와 관련한 모슬포 비행장 전투기지화 의혹 등 각종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도민 합의는 우선 순위다.

 해군 측은 이 같은 부정적 영향 등의 의아심에 대해 입으로는 모두부정하고 있다.
지역 또는 지역주민의 불편이나 피해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식석상에서의 약속이나 발언도 손바닥 뒤집듯 뒤엎어 버리고 말 바꾸기로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해군 측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도민들이 실망하고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해군이 우선 신뢰성 회복에 나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야 진지한 토론이나 대화가 가능하다.

협량과 꼼수로 도민을 속이려 들거나 군사작전 식 밀어붙이기는 곤란하다.
해군의 명예와 당당함은 ‘나라와 국민에의 충성이 바탕’이 될 때 더 빛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