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양보건진료소, 그 후 20년

2015-05-11     제주매일

20년 전의 비양도의 모습이 갑자기 눈앞에 다시 살아나 꿈틀거린다. 당시 비양보건진료소는 선착장에서 내려 서쪽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외딴 집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외로워도 외로울 수 없었던 근무지였다.

그래서일까, 소박한 주민들은 정이 넘쳐났고 오히려 본섬을 바라보는 눈에는 남다른 희망이 보이기도 했다. 그 희망은 어느덧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겐 진짜 섬의 모양을 갖춘 곳은 비양도 밖에 없다라는 입소문에 도항선의 입·출항 횟수도 당연히 더 늘어났다.

1994년 4월에 발령 받았던 곳, 비양도에 다시 들어와 근무를 하다 보니 그 20년이라는 시간 속에는 아픔이 스며들어 있었다. 실제 거주하는 주민들은 90여 명 정도인데 세월의 흔적처럼 개개인마다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관절염 등 만성질환자가 많이 늘었다. 더구나 어떤 분은 세 가지 이상의 질환을 복합적으로 앓고 있는 것에 유독 마음에 걸렸다. 비껴갈 수 없는 세월 속에서 인간은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지만 이제는 20년 전의 외딴 집이 아닌, 선착장 바로 앞에 깨끗하고 번듯하게 세워진 비양보건진료소가 그 진가를 발휘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물결을 가르며 다가오는 도항선. 그것이 정답이 아닐까? 1일 3회 이상 입·출항하는 도항선을 바라볼 때마다 진료소 건물을 휘감는 것 같은 기운을 느낀다. 다가온다는 것, 아니 멀리 있다가도 어느 결에 손짓하며 방긋이 다가서는 제주의 정처럼, 도항선의 자세야말로 비양보건진료소가 본받아야 할 소임이라고 거듭 생각해본다.

섬 속의 섬, 비양도에는 주민들과 관광객들의 쉼터 역할을 하는 보건진료소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어쩌면 청정 비양도의 당당한 얼굴이기도 하다.

오늘도 멀리서 도항선이 다가오고 있다. 아니다. 비양보건진료소와 도항선은 먼저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그 믿음에 활짝 웃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