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이주 계획자의 ‘입도자격’

2015-04-21     최한정

차근차근 준비하라는 당부
우선 머무르며 제주 배우기
나중 가슴에 남는 곳이 살 곳

일용직이라도 일 갖는 게 중요
정보 통해 커뮤니티 동화 기회
삶의 터도 신중히 판단해야


최근 제주 이주민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서 이주계획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 몇 가지 당부가 있다. 기회와 재력이 있어서 원하는 땅을 매입하고 집을 짓는 것이야 자유의사이겠지만 거꾸로 제주의 입장에서 “당신은 과연 자격이 있을까”의 화두다.

자격 운운하니 불편해 하실 분도 있겠지만 제주를 얼마나 알고 살겠다고 찾아오는지 생각해 보자는 얘기다. 게다가 적잖은 이들이 아름답다고 ‘겁도 없이’ 바닷가에 집을 짓는다. 과연 괜찮을까? 만나는 분들마다 물어오는 것으로, 이주하실 분들이 차근차근 준비해서 ‘자격’을 갖추고 답을 찾아보길 추천한다.

제주에 살 것이라고 생각해서 덥석 땅부터 매입하시는 분들 많은데 나중에 팔지도 못하고 후회하는 분들 많다. 적잖은 돈을 들여 사둔 것인데 적응하지 못하고 되팔려고 내놓을 때 겪는 애로사항이다.
이를 피하려면 우선 민박이든 장박(장기민박)이든 구해서 제주생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각 지역마다 짧게는 보름에서 한 달씩 머무르며 이웃의 생활방식과 정서를 익혀보고 품어보는 경험을 쌓을 것을 권한다. 이렇게 1년 4계절을 보내보자. 나중에 가슴과 눈에 남는 곳이 있다면 그 곳이 당신이 살 곳이다.

주중에는 놀지만 말고 일용직일이라도 한다. 이주하려는 지역에서 직업을 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먹고, 자고 놀다보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곧 지겨워진다. 놀며 먹는 것이 주는 무료함이 노동 끝에 찾아오는 휴식의 달콤함과 비교가 되겠는가. 게다가 돈도 생긴다. 생활비가 해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일을 하다보면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대화하고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온갖 정보를 획득하게 된다. 저렴하지만 알토란같은 땅이 당신 앞에서 미소를 지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못가 본 제주구경은 주말도 충분하다.

남성은 가능한 건축 일을, 여성은 식당 서빙-설거지를 추천한다. 지역 내 온갖 소문과 정보가 ‘현장’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동네’와 ‘지역’ 안에서 커뮤니티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비로소 제주살이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기왕 새로이 자리를 잡는 김에 터가 좋은 곳에 집을 갖고 싶은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제주 어디를 가나 한라산과 바다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이 없으니 육지풍수처럼 배산임수를 따져선 곤란하다. 산세와 물길이 전혀 다른 까닭이다.

제주의 바닷가는, 해안선은 땅과 바다가 절충한 지점이다. 마지막 빙하기인 수만 년 전부터 인류가 살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는 지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높은 절벽은 바다를 압박하는 절경이 보기는 좋지만 해류와 해풍에 깎이고 땅이 무너진 곳이다. 바닷가 튀어나간 땅, 제주말로 ‘코지’엔 바람과 파도가 끊임없다. 사람이 살기 힘들다.

중산간의 깊은 숲속도 오래지 않아서 외로움을 느끼기 쉽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학교와 마트가 필요할 것이다. 연령이 드신 분들이라면 병원과  약국 등의 생활여건을 고려하는 것은 기본이다. 멀리 떨어진다 해도 차량으로 10분 내 이동해야 이격감과 고독감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마을에 모여 사는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인간은 Polis적 존재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설파를 ‘무시’하더라도 바람이 적고, 물을 구하기 좋으며 바닷가여도 파도가 세지 않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극적으로 경치가 좋거나 풍광이 멋진 곳은 결코 바람과 파도가 만만하지 않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기억은 시간이 공간을 장악하는 상황이라고, 극적인 추억이 생활공간을 접수한다면 돌아올 것은 뻔한 후회가 아닐까.

인턴처럼 부딪히고 일하며 살아 본 뒤 눈에 남고 가슴에 남는 동네에서 이미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분들의 커뮤니티를 이해한다면 당신은 제주살이 준비가 다 된 것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그렇다면 제주로 오시라. 우리나라에서 딱 하나 밖에 없는 진주 같은 제주가 당신의 입도를 기다린다. 그리고 “당신은 입도할 자격이 있다”며 설문대할망이 ‘제주입도 자격증’을 내주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