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다움과 제주 이주자들

2015-04-14     송경호

 제주 변화의 속도 너무 빨라
창작노동자 치솟는 땅값에 좌절
제주만의 것도 사라지는 현실

개발의 방향과 속도 선택의 문제
제주의 소중함 아는 이주자들
좇는 가치 존중하고 이뤄나가야


제주의 변화 속도가 무척 빠르다. 최근 몇 년 동안 서너 달 간격으로 오가면서도 크고 작은 변화를 감지한다. 도로가 북적이고, 여기저기 낯선 건물들이 앞 다퉈 들어선다. 돌담이 무너지고, 수선화와 고사리 등이 사라진 자리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쓰레기 등으로 채워지고 있다. 차량들은 물론, 심지어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빨라진 듯하다. 무릇 앞만 보고 내달리는 변화에는 가속도가 붙기 마련. 이 추세라면 머잖아 뽕나무밭이 바다가 되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기적을 보게 될 수도 있겠다. 

사람과 돈이 몰리니 그토록 염원하던 ‘관광제주’ 시대가 마침내 열린 것인가. 그래서 제주와 도민들에게 ‘좋은 시절’이 온 것인가. 제주에 머무는 동안 내내 든 생각이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던진 질문이지만 똑 부러진 답은 구하지 못했다. 토박이들은 시큰둥했고, 이주민들은 뜨악한 표정이었다. 하긴, 얻는 것과 잃는 것들을 가늠하기에는 변화의 속도와 규모가 너무 빠르고 크다.

제주가 북적이면서 주위의 벗들도 덩달아 엉덩이를 들썩인다. 대부분 시계추 같은 삶과, 빵이 되지 않는 창작노동에 지친 이들이다. 누구든 사냥꾼 아니면 사냥감이 되어야 하는 정글이 된 도시에서 벗들은 불행히도 사냥꾼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사냥감이 될 수는 없으니 결국 어디론가 탈주해야 하는데, 그 곳이 바로 제주인 거다. 그리 보면 벗들에게 제주는 유토피아거나, 제주 사람들이 막연하나마 그리고 위로받는 이어도일지도 모른다.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어디든 탈주를 꿈 꿀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족할 거다. 오늘의 제주 현실이야 어떻든 말이다. 

하지만 벗들이 꾸는 꿈도 오래 가지 못할 거 같다. 꿈이야 야무지지만 넘어설 벽이 높다. 거의 날마다 들려오는 제주발 뉴스에 그들이 꾸는 꿈도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천정부지로 솟구치는 제주 땅값 소식은 벗들의 꿈을 가리는 먹구름이다. 거금 들고 몰려드는 낯선 이들의 위세 앞에 빈 주머니 벗들은 좌절한다. 제주가 이주할 곳 아닌 투기장이 되는 한 이들의 꿈은 꿈으로 끝날 거다.

내일의 꿈을 위한 이들의 현장답사 또한 종종 실망으로 끝난다. 속살을 드러낸 중산간 지대와 쓰레기로 뒤덮인 바닷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압도하는 인공 구조물들과 현란한 불빛들... 무엇보다 ‘제주만의 것’과 ‘제주다운 것’들이 사라지고, 정체불명의 느닷없고 황당한 것들이 잇따라 들어서는 현실에 아파한다. 아무리 꿈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라지만, 그 사이의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이제부터다. 개발을 피할 순 없겠지만 방향과 속도는 선택 사항이다. 몇 년 새 제주에 몰려드는 부류는 거칠게 보면 결국 두 부류다. 제주를 돈벌이 수단 삼는 쪽 아니면 삶의 터전 삼고자 하는 이주민으로 나뉜다. 두 부류의 이해관계는 개발과 보존으로 서로 맞선다. 그간 제주도는 주로 전자(前者) 쪽을 택했고, 많은 공을 들였다. 몇 년 새 크게 늘어난 거의 모든 이주민들은 오로지 자신들만의 힘과 노력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왔을 뿐이다. 결국 공공부문의 정책은 돈을 벌기 위한 투자자에게 집중됐을 뿐, 삶의 터전을 옮겼거나 옮기려 하는 쪽에는 소홀했던 셈이다.

어찌 보면 제주 이주자들 또는 이주를 도모하는 이들이야말로 제주의 소중한 것들을 잘 알고 있다 할 것이다. 제주는 토박이들에게는 오랜 세월 삶의 자리였지만, 이주자들에게 있어  낯선 그 자리는 탐색과 탐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삶의 뿌리째 옮겨가는 제주는 마치 새로 만난 연인과 같아 열정적 사랑과 헌신의 대상이 된다. 이해관계를 벗어난 이주자들의 뜨거운 제주사랑과 열정은 제주의 커다란 무형자산이다. 그 가치는 돈 놓고 돈 먹기 식 개발업자들과 견줘도 쉽사리 가볍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제주는 이제라도 이주자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주자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것들, 그들이 간절하게 좇는 가치를 존중하고 이뤄나가야 한다. 개발의 방향과 속도 조절에 있어 제주만의, 제주다운 것들이 오래도록 이어질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