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공부 다시 해야 할 ‘도의회’
2013년 식사비 집행 ‘전국 2위’
심야시간 사용은 서울 ‘압도’ 최다
악화여론에 ‘업무추진비 규칙’ 제정
규칙에 ‘일시(日時)공개’ 명기 불구
날짜만 적고 시간은 미기재 ‘꼼수’
‘찔리는 게 있을 것’ 합리적 의심
누가 하라고 하지도 않았다. 물론 사회적 분위기가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자발적 행동이었다. 지난해 3월 ‘제주도의회 업무추진비 사용 및 공개 등에 관한 규칙’을 제정한 도의회 얘기다.
도의회의 관련 제도 제정 움직임은 이미 지난 2011년부터 있었다. 도민들의 혈세를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집행하자는 도의원들의 자발적 움직임에 기대가 일었다. 그런데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그 이유를 도민들은 짐작할 것이다.
그것이 맞을 것이다. 도민들에겐 집행의 투명성이 도의원에겐 집행의 속박이 아니었을까. 의장님이라고, 위원장이라고 도의회에 진출해 ‘벼슬’을 하는데 국가에서 준 카드로 지역구민들에게 기분도 내고, 가끔은 지인들과의 음식값도 계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업무추진비 공개가 의무화되면 힘들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그리고 우려가 현실의 문제로 나타났다. 2013년 국민권익위원회의 전국시·도의회 청렴도 평가에서 제주도의회가 바닥권에 이름을 올렸다. ‘업무추진비 집행내역 공개 의무’를 지키지 않은 이유도 컸다.
그리고 당시 도의회의 ‘장(長)’님들의 배정된 2억2500만원 규모의 사용내역도 ‘화제’였다. 전체의 절반이 훨씬 넘는 1억2980만원(57.7%)이 1093건의 식사비용으로 지불됐다. 특히 지적 받은 식사 집행 내역에서 인구 ‘최소’인 제주도의회가 전국 ‘최대’인 서울시의회의 ‘실적’을 위협하는 월등한 전국 2위를 차지, ‘썩소’를 불렀다.
식사집행 내역에서 인구 16.6배의 서울시는 2157건으로 제주도의 2배에 불과했고 최소인 강원도의회는 제주도의회의 절반도 되지 않는 509건이었다. 제주도는 의정활동과 연계하기 힘든 자택 인근 식사가 394건으로 서울 703건·전라남도 397건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또한 공휴일 사용은 246건으로 서울의 351건 다음 2위, 심야시간(밤 11시 이후)은 65건으로 서울(31건) 마저 제치고 전국 1위로 드러나면서 도민사회의 공분을 샀다.
우려처럼 도민들의 혈세가 도의원들의 주머니돈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된 셈이다. 이래도 제주도의회는 버티었다. 시민사회단체의 구체적인 공개요청을 거부하고 행정심판까지 가서 승리,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악화된 여론을 넘지는 못했다. 결국 2014년 3월 ‘제주도의회 업무추진비 사용 및 공개 등에 관한 규칙’을 제정했다. 그런데 여기서도 ‘잔머리’가 등장했다. 식사비에서 지적이 쏠린 것이 심야·공휴일과 함께 집주변 등 ‘의정활동과 연관성 낮은’ 시간과 장소에서의 사용이었음에도 ‘반드시 기재해야할 사항’에서 장소를 슬쩍 빼버렸다. 집행의 투명성을 위해 제도를 만들겠다면서 투명성 여부를 비춰줄 가장 밝은 2개의 전조등 ‘시간과 장소’ 가운데 하나를 아예 꺼버리는 셈이다. 이는 도민들에 대한 꼼수다.
좋다. 그것까지 용인하자. 공사(公私) 구분없이 집 주변에서까지 일을 하겠다는 취지로 이해하자. 그런데 자신들이 규칙으로 정한 ‘업무추진비 사용내역 공개’ 내역 첫 번째에 ‘사용일시(使用日時)’라고 명시해놓고도 이후 발표되는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에는 그 누구도 ‘시간’마저 기록 않고 사용일(使用日)까지만이다. 이는 도민들에 대한 오만이다.
밤늦은 시간까지, 주말에 가족도 챙기지 않고 일했다면 당당히 공개하라. 규칙에도 객관적 자료가 있을 경우 ‘공적인 의정활동과 관련이 적은 심야시간(23시 이후) 사용’을 예외로 하고 있다.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이는 도민들에 대한 기만이다.
도의회 관계자의 핑계도 군색하다. “판례와 행정심판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시간과 장소를 제외한 일부만 공개로 원칙을 정했다”는 것이다. 다시 국어 공부를 하고 가정교육을 받아야할 사람들이다. 분명히 도의회 규칙 제6조1항에 공개대상으로 ‘사용일시’라고 명시돼 있음에도 행정심판을 운운하고 있다. 이는 도민들에 대한 우롱이다. 선친의 유서에 명확히 적혀있는데 다른 집안사람들에게 물어보겠다는 격이다. 정말로 창피한 일이다.
어설픈 핑계로 공개를 거부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장소와 시간을 떳떳하게 공개할 것을 촉구한다. 무언가 ‘찔리는 게’ 있지 않고서는 이러지 않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에 대한 확신이 굳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