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등에 업혀 동네 돌던 기억 생생”

4·3행불 희생자 유족 홍찬표씨가 맞은 4·3 추념일

2015-04-05     윤승빈 기자

“아버지 얼굴은 가물가물하지만 아버지 등에 업혔을 때의 그 느낌은 지금도 생생해…”

제67주기 4·3희생자 추념식이 봉행된 지난 3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추념식이 시작됐지만, 홍찬표(75) 씨는 행사장 뒷편에 있는 행방불명인 묘역에서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는 4·3사건 이후 소식이 끊겨 생사조차 모르는 아버지 묘역을 찾아 넋을 위로하고 추념하고 있었다.

제주읍 노형리(현재 제주시 노형동)에서 농사를 짓던 그의 아버지 홍순화(당시 나이 31) 씨는 4·3사건이 발생했던 1948년 느닷없이 집으로 쳐들어온 군인들에게 폭도로 몰려 형제들과 함께 끌려갔다. 당시 9살이던 홍씨는 그 후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아버지가 예비검속 대상자에 포함돼 1950년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다는 소식을 끝으로 더 이상 아버지의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홍씨는 “젊었을 때만 해도 아버지 얼굴이 곧 잘 떠올랐는데 지금은 가물가물하다”며 “하지만 아버지 등에 업혀 동네를 돌던 그때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냈다.

아버지 등에 업히는 것을 좋아했던 꼬마 아이는 지금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가 됐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만은 어린 시절 그대로다.

그는 이날 부인 전부자(75) 씨와 함께 묘역을 찾았다. 아버지 묘비 앞에 국화꽃 한 송이를 올려놓은 뒤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상석(床石)에 올리고 제사를 지냈다.

홍씨는 “아버지의 생사를 몰라 매년 4월 3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며 “돌아가신 걸로 보는데, 유해를 찾아 제대로 장례를 못 치른 것이 평생 한이 될 것 같다”고 토로했다.

홍씨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수많은 유족들은 이날 행방불명인 묘역을 찾아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4·3희생자 행방불명인 묘역은 2012년 조성됐다. 현재 이곳에는 3806기가 안장돼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