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된 탄생, 의문의 능력…상당수 외부 용역 의뢰

[심층진단] 제주도 공기업의 현주소
<7>제주여성가족연구원

2015-03-26     박민호 기자

최근 저 출산 고령화 및 다문화 가구 증가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출현하고,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고, 이에 따른 여성들의 문제가 사회적 관점으로 부각되면서 구체적이고 현실감 있는 여성 지원 정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원장 현혜순, 이하 여가원)은 여성의 경쟁력 향상과 사회참여 등 여성·가족정책의 효율적인 개발로 성(性) 평등 제주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지난해 3월 설립됐다.

 

■ 도의회도 법적 설립 근거 부족 등 지적

당시 제주도는 이 같은 과제들을 해결하고, 여성과 가족의 욕구를 현실에 반영하기 위한 전문여성정책 연구기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제주여성계의 오랜 염원’이라는 여론몰이까지 하며 연구원 설립을 강행, 논란을 자초했다.

여가원의 기능에는 동의하면서도 제주도의 부채규모 등 재정여건상 독립기관으로 필요하느냐는 ‘절박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여성계 자체의 반대도 없지 않았다. 특히 2012년 제주특별자치도의회는 여가원 출연금 지원이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당시 제주발전연구원 내 여성정책연구센터와의 중복 문제와 센터에 대한 보강 없이 막대한 예산을 투입, 연구원을 시설하겠다는 제주도의 주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연구원은 탄생했고, 1년이 지났지만 여가원의 비전과 목표에 의문을 제기하는 도민사회의 목소리는 여전히 크다.

더욱이 부족한 예산과 인력 등의 어려움 속에서도 도민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성·가족 실태조사를 통한 결과물을 도출해 내는 등의 성과를 내세우며 선전(?)을 펼치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도민사회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여가원은 제주 여성·가족과 소통하는 체감도 높은 정책 개발을 목표로 ‘제주여성의 가치’ 가시화 실현, 현장중심 연구와 정책 대안제시, 성인지 정책의 실효성 제고, 도내·외 네트워크 강화, 연구원의 전문성 확보와 효율적 경영시스템 구축 등 6개 실천 전략과 제주 여성·가족의 가치 발굴 및 계승 연구, 성평등정책 기반 강화를 위한 정책 개발, 성인지 예산 제도 정착을 위한 지원과 연구, 찾아가는 간담회 등 지역 현장과의 소통 강화, 연구 수행 절차 및 연구의 질 관리 체계화 등 14개 실천과제를 추진 중에 있다.

■ 연간 운영비 8억원 ‘도민 혈세’로

여가원은 지난해 예산 1억7800만원을 투입해 ‘2014 제주특별자치도 여성·가족실태조사(3건)’와 ‘제5차 제주특별자치도 여성정책 기본계획’, ‘24시간 어린이집 확충방안 방향 연구’, ‘2014년 여성폭력 관련 기관 및 시설 종사자 처우개선 방안(이슈브리프)’ 6건의 자체 과제와 ‘여성 경력유지 정책현장 모니터링(여성가족부/한국여성정책연구원 수탁사업)’과 ‘여성발전기금 지원 사업 평가 및 집행 기준 마련(2개 과제)’ 등 3건의 수탁·대행과제를 수행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연구(조사)사업 상당수를 외부업체에 용역을 맡기면서 국가·지방자치단체 또는 공공단체 등이 위탁하는 교육 및 여성·가족정책개발 등의 사업을 수행하겠다던 연구원 설립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3월 개원 이후 다양한 사업계획을 수립, 연구에 들어갔지만 연말이 되도록 단 한건의 연구실적도 발표하지 못하면 도의회에서 뭇매를 맞기도 했다.

당시 현혜순 이사장은 “설립 후 4개여월 동안은 인력 채용과 조직 구축을 위한 기간이었고, 실제 연구를 시작한 것은 8월부터였다”면서 “그나마 연구원들의 강행군을 통해 중요한 여성정책들이 수립됐다”고 항변했다.

일부사업의 중복성 문제도 여가원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도의회 보건복지안전위원회 현정화 위원장은 “우리가 탄생시키면서 말도 많았고 탈도 말았던 여가원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면서 “의회에서 제주여성정책포럼이라는 연구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데, 여가원이 비슷한 포럼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며 여가원 사업의 중복성 문제를 지적 했다.

이에 대해 여가원측은 중복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25일 여가원 관계자는 “제주발전연구원, 도의회 여성정책포험 등과의 중복 논란이 있는건 사실이지만 실질적으로 중복되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여성가족포럼은 개원을 하면서 현장성 있는 정책 반영을 위해 꾸린 것이고, 도의회의 여성포럼은 여성의 정치참여 등을 위한 목적으로 특화된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중복된 부분에 아니”라고 강조했다.

■ 출연금 30억 물거품…운영 차질 불가피

이런 가운데 제주도가 여가원 출범 당시 약속했던 약속한 출연금 30억원 조성 계획이 물거품이 되면서 향후 연구원 운영에 차질이 예상되고 있다.

제주도는 도 자체 예산 10억원과 금융 및 경제계에서 20억원을 지원받아 연구원 출범에 따른 출연금 30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관련법에 지방자치단체가 출연한 기관에서는 타 기관·단체로부터 기금을 받지 못하도록 돼 있어 금융·경제계로부터 20억원을 지원 받겠다던 제주도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특히 금융·경제계의 20억 지원 ‘협의’도 없고, 법적 근거도 없는 제주도의 일방적인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도민사회의 비난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제주도여성가족정책과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제주도 출연금 10억원은 마련됐지만 금융·경제계에서 받기로 한 출연금은 관련법에 저촉되면서 마련하지 못한 건 사실”이라며 “당시 담당자가 이 같은 법적인 문제를 확인 하지 못하면서 발생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기금 적립해도 이자도 2%밖에 안 되고, 예산의 효율적인 사용 측면에선 지금은 예산에 편입, 연간 8억원의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여가원 관계자는 “우여곡절 끝에 태어났지만 짧은 시간 내 다양한 연구와 조사를 통해 제주사회에선 이례적이고, 좋은 자료를 수집해 왔다”면서 “당초 제주도가 약속했던 출연금이 들어오지 않아 아쉬움은 있지만 도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함께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많은 분들의 우려 속에서 출범은 했지만, 구성원들의 노력 끝에 소중한 결과물들이 생산되고 있다”면서 “우리가 갈등을 유발하거나 중복되거나 하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을 갖고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