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대로 '펑펑' 쓴 제주도 예산
1.
제주도정이 인사, 예산운용, 계약 등 전 분야에 걸쳐 부실이 노출됐음은 지방자치의 부정적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깊은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특히 수 백억 원대의 예산을 멋대로 방만하게 집행해 온 것으로 밝혀져 예산과정의 낭비요소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는 지난 11일부터 25일까지 제주도에 대한 감사를 벌인 정부합동감사반의 감사 결과 나타났다. 이에 따르면 이 기간에 172건이 감사사항으로 지적됐으며 이 가운데 56건 41억4800만 원에 대해서는 회수·추징 또는 감액·재시공해야 할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번 감사에서 지적된 사항 중 가장 큰 문제점은 도민의 혈세인 예산을 법규정에서 벗어나 임의대로 사용해 온 점이다. 예컨대 지난해 제주도개발사업 특별회계 예산에 편성된 복권 수익금 618억 원 중 제주도가 자체발주로 시행한 사업예산은 4.2%인 4건 26억 원에 불과했고 대부분인 592억 원은 민간경상보조 및 자본보조, 출연금·전출금, 시군 보조금 등에 집행하면서 방만하게 운영돼 온 것으로 지적됐다.
특히 제주도개발사업 특별회계의 경우 지난해 13개 사업 137억 원, 올해 9개 사업 252억 원 등 389억 원이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 연차별 투자계획과 무관하게 사용돼 왔다.
2.
그렇지 않아도 민선 자치 이후 공약 사업의 남발이나 예산의 선심성 지출, 방만한 재정 운영, 경영 수익 사업의 무리한 추진, 주머니 돈 쓰듯이 예산을 주무르는 공무원의 행태 등이 지방재정을 어렵게 하는 원인으로 지적돼 왔지만, 이번 감사 결과에서도 이 같은 문제들이 예외 없이 드러났다고 하겠다.
사실 지방자치단체의 행정활동은 일련의 예산과정을 실제 행정에 구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예산과정이 지방행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높다. 따라서 예산의 운영상태나 낭비요소를 점검한다는 것은 지방행정의 효율성을 점검하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번 감사 결과는 시사하는 바 크다. 지난 2002년 7월 이후 2년10개월 여 만에 실시된 이번 정부합동감사는 정부 주요 시책과 제주도의 각종 사업을 진단해 효율성을 제고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본다.
아직도 재정자립도가 크게 취약한 제주도로서는 합리적인 예산운용을 통해 재정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해야 할 것이란 점에서도 부실 투성이 예산집행이라는 감사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 같은 잘못을 다시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3.
이번 감사에서는 120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아직까지도 지지부진한 호접란 대미 수출 사업 관련 의혹이나 삼다수 불법 계약 의혹, 광역 폐기물 소각장 건설 특혜 의혹, 그리고 사회단체 보조금 의혹 사건 등 전임 도정이 남긴 각종 의혹들이 명쾌하게 규명되기를 바랐으나 감사원 감사대상이라는 이유로 제외돼 아쉬움을 주고 있다.
이제 공은 감사원으로 넘어갔지만 얼마나 의혹의 실체를 파헤쳐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책임소재를 밝혀낼 지는 과제로 남는다. 이들 의혹들은 행정당국이 실체적 규명보다는 유야 무야 문제가 덮어지기를 바라는 듯한 행보를 보임으로써 도민들로부터 불신과 불만을 사온 현안이었다.
그러나 이번 감사에서는 지적사항만 도출된 것은 아니다. 관광레포츠산업 육성이나 제주 경제 살리기, 미래산업 육성, 감귤 구조조정, 지역항공사 설립, ‘(주)다음’ 유치 등은 호평을 받았다. 이는 제주도가 지역특성에 맞는 행정지표를 세우고 지역개발과 경제활성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객관적으로 평가받은 결과로 도정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
제주도는 이번 감사를 거울삼아 예산을 주민의 복지향상이나 지역발전을 위해 효율적으로 집행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온몸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