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꽃’ 봄 훈풍타고 먼저 피어 숲을 깨우다

김대신 연구사의 제주식물이야기
⑥바람있어 일찍 세상과 대면하는 봄꽃

2015-03-08     제주매일

약간은 쌀쌀하면서도 숨기와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봄바람이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한다. 바람의 땅에 살고 있지만, 계절뿐만 아니라 지역에 따라서 그 감흥이 분명 틀릴 것이다. 겨울철은 지겨울 정도로 차갑게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요즘 부는 바람은 몸과 마음을 깨워주는 듯 하다. 더욱 앙상한 나뭇가지만 보이는 숲속에서는 조용한 숲속의 정적을 깨우는 바람이 있어 일찍 세상과 대면한 봄꽃의 존재감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꼽히는 바람과 관련된 식물은 ‘바람꽃’이다. 식물명에 바람이 들어간 종류도 대부분이 바람꽃 종류이고, 영명을 살펴봐도 대부분 아네모네(Anemone) 종류들이다.

아네모네는 그리스어로 ‘바람의 딸’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보통 바람꽃하면 아네모네를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바람꽃을 보면 꽃피는 시기가 아직은 이른 봄이라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꽃잎 전체가 가냘프게 흔들리는 모습이 딱 그런 모습이여서 그럴 것이다.

 

변산바람·남바람·꿩의바람·세바람꽃

제주도에 자라는 바람꽃이라는 식물명을 가진 식물로는 변산바람꽃, 세바람꽃, 꿩의바람꽃, 남바람꽃 등 네 종류다. 이 중 변산바람꽃이 가장 먼저 피고, 한라산이나 높은 지역에 있는 오름을 오르다 보면 소나무숲이나 낙엽활엽수림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종류가 세바람꽃이다.

꿩의바람꽃은 주변에서 흔하게 보는 개구리발톱이라는 식물과도 유사한데, 그보다 꽃은 훨씬 크다. 또한 바람꽃 중에서는 개화시기가 비교적 늦다.

남바람꽃은 바람꽃 종류 중 가장 최근에 알려진 것으로, 세바람꽃 보다 조금 개화시기가 늦다. 남바람꽃에 대한 최초보고는 1940년대로, 세간에 없었던 식물처럼 잊혀졌다가 이제야 밝혀진 식물이기도 하다.

변산바람꽃은 ‘미나리아재비과(Ranunculaceae)’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으로, 한국특산 식물이다. 1993년도에 처음 발표된 변산바람꽃은 전북 부안군 내변산 세봉계곡에서 발견됐다. 지금은 남한의 설악산, 내장산, 거제도, 제주도 등에서 분포한다.

한동안 이러한 정보교류들이 활발하지 못한 시절에는 ‘너도바람꽃’으로 불리기도 했다. 변산바람꽃의 학명은 ‘Eranthis byunsanensis’이다. ‘Eranthis’는 그리스어로 ‘봄꽃’을 의미하며, 종소명인 변산반도지역이 자생지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 식물이 알려진지 짧은 시간이 흘렀지만, 전국 여러 곳에 분포하고 개화시가 빠른 종류라 이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변산바람꽃의 개화시기는 빠른 경우 2월말 경부터 피기시작하지만 대체로 3~4월이며, 자생지별로도 다소 차이를 보인다. 변산바람꽃은 꽃의 구조가 특이하고 좀 복잡하다. 대부분의 바람꽃 종류들이 그러하듯 꽃잎처럼 보이는 것으로 사실상 꽃받침이 변한 것이다.

꽃술 주변을 둘러싼 초록색 깔때기 모양 기관은 퇴화한 꽃잎이고, 꽃잎처럼 보이는 꽃받침 잎의 안쪽에 좀 굵은 수술이나 암술처럼 2개로 갈라진 형태다.

그 안쪽에 위치한 수술은 꽃밥이 연한 자색이다. 이렇게 따지면 꽃은 흰색이 맞지만 꽃잎색은 흰색이라고 할 수 없다. 다른 바람꽃과는 달리 연두색 암술, 연한 보라색 수술, 초록색 깔대기 모양 기관 등 변산바람꽃은 적당히 호기심을 자극할 만큼 특이하다. 그리고 잎은 줄기에서 나온 잎과 근부에서 나온 잎이 차이를 보인다. 근부에서 나온 잎은 오각형인 듯 둥근 모양이고 갈라지며, 지상부 줄기에서 나온 잎은 2장으로서 불규칙하게 갈라진다.

변산바람꽃 꽃구조가 특이하고 복잡

변산바람꽃은 땅속부분도 독특한 편인데, 지면에 나와 있는 연약한 줄기에 비하면 아주 단단해 보이는 괴경(덩이 모양을 하는 땅속 줄기, 감자나 토란같은 형태)이 존재한다. 생각보다 땅속 깊이 묻혀 있는 괴경은 직경 약 1.5㎝ 정도로 동그란 모양이다.

일종의 땅속 저장기관격인 이 괴경은 변산바람꽃의 생존이나 적응방식을 잘 보여주는 형태로 하천변 같은 박지에서 적응하고 정착이 용이하며, 이른 봄에 꽃을 피워 번식을 마치고 주변 나무들의 잎이 나기 전에 광합성을 통해 덩이뿌리에 영양분을 가득 저장해 다음해를 준비 할 수 있어 설령 연약한 줄기 잘려나가도 다시 생존을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제주지역에도 변산바람꽃 자생지들이 많은데, 주로 한라산을 중심으로 볼 때 북사면쪽으로 많이 분포하고 있다. 자라는 환경은 대부분 계곡사면이며 드물게는 곶자왈지역에도 자란다. 완만한 계곡주변에서 주로 자라는 것을 보면 수분이나 양분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배수도 잘되는 곳을 좋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양지바른 사면을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다.

변산바람꽃은 꽃의 변이형태도 다양하다. 변산바람꽃의 유사종으로는 경기도 서해안에 있는 풍도에 자란다는 풍도바람꽃이 있을 정도로 변이가 심한편이다. 제주지역에 소소한 변이종들이 많이 보이는 것도 사실인데, 앞으로 지역적인 변이에 대한 분류학적인 연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품종개발이 가능한 대목이다.

변산바람꽃을 구경하기 좋은 곳은 오름의 등산로변이나 하천변도 좋으며, 제주시 인근에서는 절물자연휴양림도 좋을 듯하다. 바람에 꽃이 흔들려도 꼿꼿히 설 수 있는 건 땅속 깊이 있는 괴경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바람의 딸' 변산바람꽃의 꽃바람이 불어오면 완연한 봄이 올 것이다.

<제주도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