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야 너를 어찌하란 말이냐
참으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영물로 취급돼 제주인의 사랑을 받던 노루가 이제는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돼있으니 말이다. 글쓴이 또한 어릴 적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한라산을 올라갈 때 우연히 노루와 마주쳐 신비로움을 느꼈던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노루는 관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개체수가 적었으나, 1987년 이후 민·관·군 합동으로 먹이주기, 밀렵·밀거래 단속, 올가미·올무 수거 활동 등을 하고 한라산 부근 저지대의 산간 주요 도로를 노루 보호도로로 지정하는 등 각종 보호정책을 강력히 펼치면서 개체수가 급격히 불어났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노루가 먹이를 찾아 저지대로 내려오고, 농작물 피해가 발생하며 이도저도 못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결국 제주도는 제주특별자치도 야생생물보호 및 관리에 관한 조례를 통해 2013년 7월부터 2016년 6월까지 한시적으로 노루를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하고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것에 한해 포획을 허가하고 있다.
농작물 피해는 2009년 175농가에서 2013년 380농가로 계속 증가세를 보이다가 지난해는 314농가로 잠시 주춤한 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것이 노루의 개체수가 줄어들었는지, 관에서 펼치는 각종 피해예방활동 정책이 효과를 보고 있는지는 아직 단정할 수는 없다.
노루는 인간의 눈에서 볼 때 유해하게 보일 수 있지만, 자연생태계의 구성원으로 생각하면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는 중립적 개체이다. 인간은 지구의 최종 포식자로 군림하며, 어쩌면 인간의 이기적인 기준에 자연생태계까지 관리하려 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생태계, 더 나아가 환경문제는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빨리 빨리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태계에 대한 연구가 먼저 이루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생태계에 최소한으로 피해를 주는 정책을 마련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행정에서도 총기를 사용한 포획을 지양하고, 그물망, 목책기 설치 등에 대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임을 도민에게 약속드리니, 도민들 또한 장기적인 관점에서 노루 개체 수 관리에 대해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어쩌면 노루가 원래의 서식지를 벗어나 먹이를 찾아 저지대로 내려오는 것 자체가 우리 인간들이 자연을 무분별하게 개발하고 파괴하는 것에 대한 대자연의 작은 경고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