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1990년대 들어 허용…소득늘며 여행 ‘붐’

길호동의 차이나스토리
<5>중국인들의 여행이야기

2015-03-03     제주매일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에는 만리장성이며 자금성에 이화원과 원명원․천단까지 중국의 많은 유적들 중에서도 정수를 수시로 접할 수 있는 큰 감동이 있다. 그러나 거대한 도시 베이징은 애석하게도 도심에 흐르는 강도 품고 있지 못하다. 나지막한 동산들조차 없어 자연(自然)이 아쉬운 도시다. 옛 시간 베이징을 출발하여 저 멀리 항저우(杭州)까지 이어진 1800㎞의 대 운하가 멈춰진 채로 있을 뿐이다. 이 대운하는 최근에 중국의 46번째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베이징에 20년 가까이 살면서 확연하게 달라졌다고 느끼는 것들 중 하나가 중국인들이 해외여행을 어렵지 않게 다닐 수 있는 사회가 됐다는 점이다. 생활 수준의 급격한 향상 덕에 ‘일상’이 돼 버린 중국인들의 해외여행도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가 그리 오래지는 않다.

잠시 과거로 가 보면 1920년대 세계열강들의 영향으로 일찍이 국제도시가 됐던 상하이(上海)의 부유층들 사이에서는 일본 행 벚꽃놀이 관광이 유행했고, 1927년에는 중국 최초의 여행사가 설립됐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부터 해외단체관광단이 활성화됐던 것이다. 그러나 내전과 전쟁, 중화인민공화국의 출범,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빈곤의 시간을 지나 개혁개방이 가시적인 경제적인 성과를 갖기까지 60여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중국인들의 해외여행은 다시 시작된다.

중국 정부가 공무 외에 인민들의 자유로운 해외여행을 허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에 들어서다. 1차적으로 태국에 이어 싱가포르․말레이시아를 해외여행 가능 지역으로 허가하면서 단체여행 조건 등의 제한성을 가진 중국인들의 해외여행은 막을 올리게 된다. 이후 점진적으로 여행 개방국가가 증가하게 되며 대한민국은 1998년도에 개방이 된다.

이후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중국인들에게 한청(漢城)으로 불리던 서울은 서우얼(首而)로 공식 호칭을 바꾸면서 비슷하게나마 한국어 고유 발음을 찾게 됐다. 중국의 화폐인 인민폐 가치는 원화 대비 무려 80% 가량이나 절상됐고 인민들의 소득 또한 간단없이 늘어나다 보니 해외여행 붐이 일면서 가까운 나라 한국 여행은 이제 유행처럼 됐다.

그리고 15년, 통계에 의하면 2013년 대한민국을 찾은 외국인 중 중국인 수가 연인원 432만여명으로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을 찾은 외국인 중 대한민국 국민이 연인원 396만명으로 역시 1위다. 1992년 한중 수교 후 불과 20여 년만에 대한민국은 중국인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나라가 되었고 중국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나라가 된 것이다. 2014년 현재 중국은 대한민국을 비롯해서 세계 여러 국가에 대한 최대 여행객 송출 국가가 됐다.

제주도와 베이징 등 여러 직항노선 등 하늘 길이 열린 영향이 컸다. 그 와중에 한라산과 성산일출봉 등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며 제주도의 명성이 한층 높아졌다. 또한 제주는 중국인들의 해외여행에 있어 최대 걸림돌인 비자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주기도 했다.

제주의 ‘비자 면제’는 편리함을 떠나 중국인들의 자존감을 한껏 곧추 세워준 의미 있는 일이다. 중국에 대해서 아직도 대부분의 나라가 비자를 요구하고 있다. 해외여행을 넉넉히 다닐 만큼의 여유도 있는 사람들이지만 여전히 돈벌이를 위한 불법체류를 의심받는 셈이다. 이미 세계의 경제대국이 된 것을 감안하면 걸맞지 않은 상황이다. 비자 면제 국가가 늘어나고 있기는 하다.

현재로서는 제주도가 중국인이 비자 문제는 신경 쓰지 않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유일한 아시아 국가이면서도 가장 가까운 여행지인 것이다. 태국 등 다른 대부분 동남아 국가들은 도착비자 수속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호조건 속에 제주행 중국인 관광객들과 투자자들이 증가하자 참으로 긍정적인 변화일 것이라 여겼는데, 제주도민들의 중국인 관광객 증가와 중국 자본 유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상당히 높은 조사 결과가 있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제주를 방문하는 중국인들의 여행 모습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짐작이 간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해외여행은 해를 거듭해 갈수록 경험이 축적되고 정보도 많아지면서 한결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중국 내에서도 중국인들의 ‘잘못’에 대한 지적과 반성을 통해 개선하자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중국의 많은 미디어들이 심도 있게 국제 수준의 여행 예절을 호소하는 캠페인이 충분히 공감을 얻어내며 이미 많은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자그마치 5억명 이상의 네티즌을 가진 중국의 인터넷 환경이 큰 몫을 하고 있다. “비행기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쓰레기 함부로 버리고, 함부로 침 뱉고, 뷔페에서 음식 가져가고, 새치기 하고, 사진 함부로 찍고, 길 함부로 건너고…” 외국인이 흉보는 얘기가 아니다. 중국인들 스스로 열거하고 있는 해외여행 대표 꼴불견들이다. 인터넷에서 늘 반복되며 고치고 또 고치자고 외치고 있다.

확실히 젊은이들은 세계인들의 관심과 비평에 대해 아주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알고 있고 대응도 적극적이다. 그렇지만 비행기 한 번 타보지 못한 사람들도 아직 수억 명 일테니, ‘우정’을 가지고 다소 느긋하게 기다려볼 일이다. 중국인들의 제주 여행도 세련되어져 갈 것이다. 아름다운 제주에 어울리는 중국인 방문객들이 보고 싶다.

세월과 함께 변한 중국인들의 여행 패턴

중국에는 ‘여행의 날’이 있다. 매년 5월19일이다. 명나라 때 쉬샤커(徐霞客․1587~1641)가 30여 년간 중국 대부분의 지역을 도보로 돌아다니며 남긴 여행기록을 서적으로 출간된 날인 1642년 5월19일을 기념하기 위해 2011년 ‘여행의 날’로 지정됐다. 14억 인구의 중국인들의 국내외 여행이 산업으로서 갖는 엄청난 효과를 염두에 두었음은 물론일 것이다.

여행의 날 지정과 관련하여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가 2개 있다. 하나는 마오쩌뚱(毛澤東)과 관련한 것이다. 그가 1만5000㎞ 장정을 진행하면서 지났던 많은 지역들이 유명한 관광지가 됐고, 덕분에 중국인들이 여행이라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호남성에서 중앙정부에 마오쩌뚱의 생일(1893년 12월26일 호남성 출생)을 ‘여행의 날’로 지정해 달다는 의견서를 제출한 것이다.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지난했던 대장정의 역사가 ‘여행’이라는 정서적인 단어와 연관되어질 만큼 중국인들이 여유로워졌음을 느끼게 한다.

다른 하나는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연속 도보여행을 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린 사람 이야기다. 1963년 출생한 레이(雷)성의 한 남성이 1988년부터 2008년까지 10년에 걸쳐 도보로만 중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56개 민족을 모두 만나 보는 그야말로 대장정의 도보 여행 계획을 달성했다. 10년간의 시간을 투자, 체력도 기르고 노선도 짜고 비용도 마련하면서 기획한 8만1000㎞의 도보 여행을 10년간에 걸쳐 마무리한 것이다.

그는 명나라 도보여행가 쉬샤커 관련 우표를 접한 것이 계기가 되어 도보여행가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쉬샤커도, 마오(毛)도, 도보여행 기네스 등재자도 모두 드넓은 중국 대륙을 발로 여행했던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걷기 열풍이 중국에도 불고 있으니 그들이 걸었던 길들이 어느 날인가 트레킹 코스로 개발, 후대들이 걷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 대륙 전체에 학생들만의 특별한 무전여행 열풍이 몰아친 적이 있다. 문화대혁명 초기, 지역 교류를 통해 혁명의 경험을 공유하라는 지시에 따랐던 홍위병들의 여행이다. 당시 열차나 버스 등의 교통수단은 물론 어디를 가던 숙소에 먹을 것까지 모두 국가가 책임졌다. 학교 수업도 모두 정지된 상태라 초등학생까지 형과 언니들을 따라 넓은 대륙을 주유했던 시절이었다.

1966년의 일이다. 현재 60대 이상의 중국인들이 학창 시절 그 때 그 여행을 경험했던 세대들은, 그 특별한 여행 이후 10년의 혁명을 겪고 개혁개방의 시절을 헤쳐 오면서 이제 은퇴의 나이가 됐다. 그러는 사이, 무엇 하나 공짜 아닌 것은 없지만 한결 안락해진 해외여행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어느덧 생겼다. 세월과 함께 중국인들의 여행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