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달려갈 일이 무언가
“이렇게 서둘러 달려갈 일이 무언가/ 환한 봄 햇살 꽃그늘 속의 설렘도 보지 못하고/ 날아갈 듯 달려가 내가 할 일이 무언가/ 예순에 더 몇해를 보아온 것 같은 풍경과 말들/ 종착역에서도 그것들이 기다리겠지/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산역에서 차를 버리자/ 그리고 걷자 발이 부르틀 때까지/ 복사꽃 나오면 들어가 낮잠도 자고/ 소매잡는 이 있으면 하룻밤쯤 술로 지내면서....”
신경림 시인의 시구가 문득 떠 오른다.
산과 들이 온통 녹색의 물결이다.
그 물결위로 꽃들이 화려한 면사포를 쓰고 군무를 춘다.
계절의 여왕 오월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산야는 저토록 눈부신 풍경화를 연출하는데, 푸른 숲이나 꽃그늘에 호젓이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 보지도 못하는게 진정한 생활인가.
바쁘기만하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는데 부산스럽기만 하다.
길거리에는 모두들 달려가기만 한다. 쫓기듯이 달려가고 잡을 듯이 서두르며 간다. 서둘러 달려갈 일이 무엇인가. 그래도 사람들은 바쁘기만 하다.
바쁜 것은 속도의 변화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헨드폰, 인터넷, 비행기, 지하철, 고속철... 등등 첨단문명의 이기들은 속도의 총아들이다.
그러나 역작용도 만만치 않다. 인간의 기동성을 높이는 자동차는 자주 교통체증의 원인 제공자가 되기도 한다. 핸드폰을 빠른 소통을 가능하게 하지만 거미줄처럼 인간들을 얽어 놓는다.
장소도 때도 가리는 일이 벨이 울려대면서 속박한다, 인터넷도 정보의 홍수를 이루지만 사람들은 그 정보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이렇듯 편리하고 빠른 기술 수단들이 이제는 우리의 삶을 정체시키는 역설적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어찌해서 느림의 즐거움이 사라져 버렸는가 여유로움을 잃어버린 것일까 옛날의 한량들도 만날 수 없다.
느리고 유장한 민요가락들도 들을 수 없고, 숲속의 빈터도, 새들의 소리도 도시에서는 들을 수가 없다.
‘바쁘면 돌아가라’는 주옥같은 속담이 전승된다.
지난 40년간의 압축성장은 물질적으로 우리의 생활을 풍요롭게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천천히 걸어 갈 때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빨리빨리 달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때가 되었다.
우리사회는 너무 방내(方內)에만 집중되는 삶을 고집해 왔기에 여유가 없는 것이 아닐까 방(方)은 사방이란 뜻이지만, 테두리, 경계선, 고정관념, 조직사회를 뜻한다.
일상에서 이를 넘어서면 이탈자가 된다.
그러기에 마음은 굴뚝같은데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 꽉막힌 일상을 탈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인생에는 한 길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갈래의 길이 있는데도 말이다. 이제는 방외에도 나가봄이 어떻겠는가.
그래야 쉬어가는 삶의 지혜를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오름을 올라 마을을 내려다 보고, 시골친구들을 찾아가 술 한 잔 나누는 여유도 가져 봄직하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서서 먼 수평선을 바라보면 먼곳의 그리움을 걸어놓자.
산사를 찾아가서 참선을 해 보는 여유도 가져보자. 원하는 것을 소유할 수 있다면 그것은 큰 행복이다.
그러나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원하지 않은 것이야말로 더 큰 행복이 아닐까.
서둘러 달려가지 말고 느릿느릿 걸어가면서 한 숨을 돌려보자. 뛰는 토끼보다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현 춘 식<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