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대한민국 마지막 희망論'

2015-02-16     김계춘

 “대한민국 경제는 꺼져가는 엔진을 단 비행기와 비슷한 상황이다. 단지 날개가 있어서 추락을 면하는 것일 뿐이다.” 서울대 문승일 교수의 다소 충격적인 발언이다. 지난 12일 열린 ‘제주의 새로운 성장을 위한 경제 대토론회’ 패널로 참석한 문 교수는 작심한 듯 한국경제를 냉정하게 진단하고 비판했다.

 문 교수의 지적처럼 우리 경제는 지금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로 인해 가장 대표적인 부작용이 날로 심화되는 빈부(貧富) 격차다. 한국의 임시직 근로자 비율(2011년 기준)은 23.76%로 OECD 국가 중 스페인(25.33%)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사상 최고 수준인 9.0%까지 치솟았다. 어렵사리 일자리를 구해도 5명 가운데 1명은 1년 이하의 계약직인 ‘장그래 신분’이다.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은 우리 사회의 ‘잠재적 뇌관(雷管)’으로 꼽힌다.

 ‘부자 기업, 가난한 가계’ 역시 빈부 격차를 부추기고 있다. 계층 이동의 수단으로 여겨지던 교육은 오히려 계층 이동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변질됐다. 양극화(兩極化)로 대변되는 이 같은 현상은 시장만능과 승자독식을 두 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낳은 결과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러나 희망(希望)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경제에 혹독한 비판을 가했던 문승일 교수도 제주경제에 대해선 후한 점수를 줬다. 그는 “제주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출발점이자 마지막 희망”이라고 단언(斷言)했다.

 문 교수는 “세계경제와 대한민국은 저성장 기조 때문에 비관적인 분위기가 팽배하지만 제주는 최근 4~5%, 심지어 7%대의 성장률이 기대되고 있다”며 “제주는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프레임을 세울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기자동차를 예로 들며 “제주는 세계 최고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글로벌 전기차 플랫폼을 구축하면 세계 전기차 시장을 선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내놨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 및 일본을 연결하는 ‘동북아 허브’로서의 지정학적(地政學的) 가치도 제주의 강점으로 부각됐다.

 이번 ‘경제 대토론회’에 참석했던 패널들은 제주의 주력산업인 서비스업과 농림어업 중심의 창조경제 시스템, ICT(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산업간 융합(融合)과 혁신(革新)의 산업생태계 구축을 강조했다. 또 관광산업 위주 경제의 한계성을 벗어나기 위한 제조기업 유치와 육성 등을 주문했다.

 향후 개선이 필요하다는 날선 지적도 많았다. 각종 서비스업체 종사자들의 불친절과 인력수급 문제의 어려움, 뿌리깊은 ‘괸당문화’에서 나온 배타성 등으로 제주사람이 아니면 사업하기 힘들다는 하소연도 있었다.

 원희룡 제주도정의 경제 비전은 2020년대 초반을 목표로 ‘5%대 성장률과 고용률 70%, 그리고 도민소득 3만달러 및 GRDP(지역총생산) 25조원’에 맞춰져 있다. 제주발전연구원은 국내경제의 무난한 성장과 물가안정, 관광객 증가 등의 전제조건이 충족되면 2021년 GRDP가 25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를 이뤄내기 위해선 제주경제의 ‘판과 틀’을 좀 더 키워야 하고, 그 무엇보다 경제주체들의 의지와 도민적 역량 결집이 요구된다. 현승탁 제주상공회의소 회장이 “앞으로 2~3년이 제주의 골든타임이자 대전환기가 될 것”이라며 “지속가능한 정책방향의 제시와 전략과 비전을 구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우선 도민역량을 결집할 수 있는 리더십이 보이질 않는다. 민선 6기 출범 당시 화두였던 ‘협치(協治)’는 커녕 삐걱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예산 싸움을 둘러싼 집행부와 도의회의 갈등?대립은 설을 앞두고도 계속 진행형이다.

 원희룡 지사와 구성지 의장에게 묻고 싶다. ‘제주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출발점이자 마지막 희망’이라던 외부 인사의 충언을 그저 한 귀로 듣고 그냥 흘려보낼 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