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어려움에도 식지않는 학구열

제주초급대학 4개학과에 정원 360명 전임교원 8명ㆍ사무직원 2명으로 시작

2005-05-21     제주타임스

제주도 학교의 역사는 일제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일합방을 세 해 앞둔 1907년 제주북교가 개교한 것이 제주도 현대적 학교의 효시(嚆矢)라 할 만하다. 이어 서귀포교가 1920년에 개교한 것을 비롯 도내 대부분 전통 있는 학교들이 해방을 전후해 생겨났다. 중학교는 사립인 제주중이 1945년, 오현중과 제주여중이 1946년, 신성여중이 1949년도에 개교했다. 고등학교는 제주관광고(제주농업고)와 사립인 오현고가 1951년에, 제주상고가 1953년에 개교했다. 제주도 학교의 역사는 이처럼 제주도의 근대사다. 소망과 좌절, 애환이 범벅이 된 제주도 학교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이 고장 교육의 명암을 조명해 볼 수 있다.

교육의 목표는 인재의 양성이다. 학교 역사 속에서 하늘에 별처럼 은하계를 이뤄 빛을 내다 명멸해간 이 고장 인재들의 발자취를 더듬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컴컴한 창고 속에서 잠자던 제주도의 학교역사에 빛을 비춤으로써 마침내 제주도민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의지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제주타임스는 매주 토요일 제주도 학교의 역사를 연재하기로 했다. 요즘처럼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때가 없다. 제주타임스의 학교사 연재는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울러 근대사를 함께 일별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 대학설립의 배경과 제주초급대학 시절

 제주도민들은 4·3사건과 6·25전쟁 중에도 불구하고 자녀교육에 대한 열성으로 초·중학교를 설립하고 수많은 졸업생들을 배출하였다. 또한 전쟁으로 인해 한때는 제주도 인구의 절반을 넘는 피난민들이 제주도로 피난 오게 되었다. 제주도 출신 학생들과 피난민 학생을 수용하기 위해 임시 피난분교를 세우거나 야간제를 두는 등 2세 교육을 위한 제주도민들의 활동이 왕성하게 전개되었다.

 광복 후 미군정 기간 동안에 제주도에는 10개의 중등학교가 있었다. 그 중 제주공립농업중학교와 서귀초급중학교는 기존에 설치되어 있으면서 학제를 개편한 학교이고, 제주초급중학교와 오현초급중학교 등 8개 학교는 미군정 기간에 설치된 3년제 초급중학교였다. 현재의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6년제 고급중학교는 제주공립농업중학교(현 제주관광산업고등학교)가 있었다.

 당시 중등교육기관밖에 없었던 제주도에서 교육을 마친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려면 서울을 비롯한 타 도시로 유학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6·25전쟁 중에 있었고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본도 도민들은 대학교육을 받을 만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대학교육을 위해 유학을 떠나지 못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그만큼 고등교육기관인 대학 설립의 필요성이 증대되어 갔다.

 제주도에서 대학교육이 시행된 연원은 한국대학(현 국제대학의 전신)의 피난분교가 처음이다. 6·25전쟁이 일어나 피난민들이 대거 입도하게 되자 한국대학에서는 1951년 10월 10일에 제주도에 제주남초등학교 교사를 빌려 피난분교를 설립하여 피난 온 재학생들을 모아 개강을 하였다. 개강 당시의 학과와 학생은 법학과 40명, 영문학과 30명이었으며 야간제 수업을 실시하다가 휴전협정이 체결된 후 폐교되고 말았다.

피난분교에는 제주도 출신 학생들은 입학자격이 없었기 때문에 제주도민들의 향학열을 충족시키는 데는 이렇다 할 보탬이 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 분교의 영향으로 제주도에도 대학을 설립함으로서 교육입도(敎育立道)를 기하자는 도민들의 열망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제주도에서 대학설립 기운이 태동한 것은 6·25전쟁 직전 삼성재단의 활동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삼성재단은 법률과와 경제과 설치를 근간으로 사립대학 설치를 추진했었으나 무산되었다. 그러나 당시 제주향교재단과 삼성재단은 재정형편상 막대한 경비가 소요되는 대학설립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도립대학 설립을 위해 제주도 당국과 협의하게 된다. 삼성재단의 활동에 힘입은 지방 유지들은 1951년 9월경부터 도립제주대학 후원회를 결성하여 대학설립을 위한 논의를 통하여 제주향교재단과 삼성재단에 자산출연을 요청하게 되었다. 그 결실이 1951년 11월 5일 제주대학원의 설립으로 나타났다.

 제주대학원은 제주지역에 대학과정을 가르치기 위해 설립된 사설 대학교육 기관에 해당한다. 지역사회의 여건상 처음부터 정규대학 설립이 어려웠고, 교육시설과 환경 등 여건이 조성되면 정규대학으로 승격시키기 위한 단계의 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다. 이 대학원은 제주도 학생들의 드높은 향학열을 충족시켜 준다는 일념으로 지방유지인 문병선(文柄善) · 강석범(康錫範) · 현평효(玄平孝) 등 교육자가 중심이되어 설립 발기를 하고 제주도의 인가를 받아 제주시 용담동 제주향교의 명륜당을 빌어 야간 2년제로 개설하였다.

의숙(義塾)의 성격을 띠고 출발한 이 대학원은 개설당시 학생이 문과 35명, 법과 50명 등 총 85명 이었다. 대학원 운영진은 명예원장에 최승만 제주도지사, 대학원장에 문병선 씨였고, 사무부에 강석범 씨, 교수부는 현평효 씨가 맡았다. 제주대학원 설립은 도민들에게 대학설립 염원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였고 사실상 제주초급대학의 설립에 정초를 다지는 역할을 했다.
 1951년 11월 5일에 설립된 제주대학원은 1952년 5월 27일 도립 제주초급대학이 설치 인가됨으로서 제주도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으로서 과도기적인 사명을 마치고 1953년 3월 31일 폐교되었다.

도립 제주초급대학의 설립 인가

 도립제주대학후원회는 제주향교재단과 삼성재단의 출연으로 기본자산을 확보하고 1952년 3월 15일 도립제주초급대학 설립인가신청서와 제주대학후원회 설립 허가신청서를 문교부에 제출하였다. 같은 해 5월 27일 문교부는 ‘문교 제423호’로 축산과, 법과, 국문과, 영문과 등 4개 학과 학생정원 360명, 모집지정정원 130명을 내용으로 하는 제주초급대학 설립을 인가함으로서 대학설립을 열망하는 도민의 염원이 실현되었고 지역 문화 창달에 기여하게 될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되었다. 동년 6월1일 최승만(崔承萬)지사가 학장사무취급을 맡아 학칙을 제정하고 전임교원 8명과 사무직원 2명을 발령하여 대학이 출범하게 되었다.

 교수에 홍승국 · 장지영 · 양홍기 · 김계용, 조교수에 문창우를 각각 6월 1일자로 임용하였고 동년 7월1일에는 전임강사에 양태길을 임명하였다. 6월 첫 신입생 모집은 4개학과에 모집정원 130명이었는데도 지원자가 정원에 미달되어 전형절차를 거쳐 58명을 선발하고 8월 8일 제주향교에서 제주초급대학 개교식을 거행하였고, 그 후 제주대학원을 수료한 학생들을 소정의 절차를 밟아 편입학 시켰다.

 그러나 도립 제주초급대학은 개교당시 아무런 시설도 없었고 제주향교내의 건물 일부를 임대하여 출발하게 됨으로서 당면과제가 문교부에서 설립조건으로 내세운 자체 학교부지와 교사 등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당시는 4·3사건과 한국전쟁으로 많은 피난민이 들어와 있던 시기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1년간의 제주향교 생활을 청산하고 1953년 9월 옛 제주농고 운동장의 판잣집을 빌어 또다시 1년 동안 임시교사 생활을 하다가 제주초급대학은 2년간의 임시교사 생활을 마감하고 용담 캠퍼스를 확보하게 되는데 용담동 496번지상의 한국피혁주식회사 공장건물 422평과 부지 1364평을 1954년 6월에 매수하여 이사함으로서 제주대학은 이른바 ‘용담 캠퍼스’ 시대가 열리게 된다.

 도립 제주초급대학은 제주도가 각 읍면에 할당한 대학유지비가 제대로 징수되지 않아 건물을 인수하는데도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대학을 살리려는 여러 학부모 및 도민들의 협조와 노력으로 1954년 10월 1일 한국피혁주식회사 건물과 부지매입을 완료하고, 인근 토지 2887평을 합쳐 총 4251평의 부지를 확보하게 된다. 같은 해 8월에는 실습장 용지로 제주공항 동쪽에 위치한 공군군용지 5만 6천평에 대한 사용허가를 국방부장관에게 요청하여 사용승인을 얻어 냄으로서 대학의 면모를 갖춰나가게 된다.

 제주초급대학에는 개교 당시부터 교원자격검정령에 따른 교직과정을 설치하였으며 졸업생들은 모두 교직과정을 이수하여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중등교사로 진출하여 제주도 중등교육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제주초급대학은 2회에 걸쳐 총 229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55년 4월 6일 4년제 대학으로 승격하였다.

강 선 종<전 탐라대 교수ㆍ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