血稅 볼모 도의회 ‘옹졸한 앙갚음’
1682억원 삭감안 가결
‘준예산’ 버금가는 혼란
새해 예산안 처리를 놓고 집행부와 대립각을 세웠던 제주특별자치도의회가 증액 없이 1682억원을 삭감하는 수정 예산안을 ‘가결’, 예산안 갈등의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업의 타당성과 적절성, 시급성 등은 뒤로한 채 단 몇 시간 만에 수정 예산안을 내놓으면서 도민 혈세를 볼모로 집행부를 향한 복수를 하고 있다는 비난여론이 일고 있다.
제주도의회는 지난 29일 오후 11시 제325회 임시회 제3차 본회의를 속개, 제주특별자치도가 제출한 새해 예산안 3조8194억원 중 1682억원을 삭감하는 수정 예산안을 상정, 재석의원 37명 중 찬성 36명, 기권 1명으로 ‘가결’ 처리했다. 이날 삭감예산 중 1억9200만원은 예비비로 증액하고, 나머지 1680억800만원은 ‘내부유보금’으로 편성했다.
회계 연도 시작을 이틀여 앞두고 새해 예산안을 ‘가결’시킨 도의회 입장에선 사상 초유의‘준예산’ 사태를 막았다는 명분은 세웠지만, 내년 추가경정예산안 심사 전까지 1600억원대 예산이 묶이면서 ‘준예산’ 사태에 버금가는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날 이선화 제주도의회 운영위원장은 “사업계획이 미흡한도지사 공약사업과 투융자 심사 미반영 및 용역심의 미반영사업, 공유재산계획 미반영 사업, 과도한 업무추진비, 외유성경비, 유관기관 및 단체에 대한 선심성 예산, 사업계획이 미흡한 사업 등을 삭감했다”고 설명했지만 이와 관련 없는 예산도 상당수 삭감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심의권자의 ‘몽니’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내부유보금’은 지방의회의 예산심의 과정에서 삭감된 경비 중 예비비 등 다른 세출예산으로 편성하지 못한 예산으로 이를 사용하기 위해선 추경예산 심사(통상5~6월)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예산 심사 과정에서 극한 대립을 이어갔던 양 기관 간 감정싸움이 추경 심사까지 이어질 경우 ‘내부유보금’ 사용에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구성지 도의장은 이날 폐회사를 통해 “집행부가 그동안 의회 증액 예산에 대해 선심성, 과도한 ‘증액 예산’이라며 의회를 폄훼하고 압박한 것은 오래도록 의정사에 남을 것”이라며 “의회를 여론몰이로 벼랑 끝에 몰아넣는 싸움 방식에 따른 정치적 학습효과를 오래 기억하겠다”고 밝혀,예산 수정안 처리과정에 감정적인 대응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새해 예산안이 연내 통과되면서 ‘준예산’ 사태는 피했지만, 이과정에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양 기관의 추악한 민낯이 여실히 드러나면서 도민사회의 비난 여론도 들 끓고 있다.
제주시민단체연대모임은 30일 논평을 통해 “새해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양 기관은 극한 감정대립과 힘겨루기로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면서 도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면서 “그동안 예산안을 둘러싼 진흙탕 싸움을 벌여왔지만 이를 반성하기는 커녕 서로 선심성 예산을 편성하고 증액했다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또 “도의원 1인당 ‘20억원 요구설’은 예산 막장드라마의 ‘정점’이었다”며 “도민의 혈세로 밀실 거래를하고 ‘쌈짓돈’처럼 여긴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힐난했다.
이들은 이어 “예산은 ‘흥정’의 대상도, ‘거래’의 대상도 아니”라며 “단 한 푼의 예산이라도 오로지 도민을 위해 투명하게 쓰여야 한다”고 강조했다.[제주매일 박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