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2005-05-14     제주타임스

 “내 마음은 촛불이요 / 그대 저 문을 닫아주오 / 나는 그대의 비단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김동명) 촛불은 밤의 어두움을 밝히며, 그대와 이 시간을 소유하기 위해 타오른다.
사랑하는 이에게 온전히 헌신할 뿐, 어떠한 보상도 반대급부도 바라는 일이 없다.
촛불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쉬지 않고 타겠다는 약속으로, 길이 사랑한다는 의미를 가득히 채워 놓는다.
촛불은 가느다란 양초를 남김없이 태우면서 사실은 둔중한 힘을 가진 암흑을 살라먹고 있는 것이다.

촛불을 켜면 거울의 유리알, 벽에 걸린 사진틀, 어린 것들의 눈망울과 입 언저리, 모든 것이 생명을 얻고 살아난다.
불빛은 방 안에 가득히 원을 그리며 윤곽을 선명히 한다.
그 안에 들어오는 것들은 맥박을 치고 호흡을 하며 생의 환희를 발산한다.
어떤 화가가 쓸쓸한 저녁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어둡고 침울한 잿빛 하늘을 배경으로 외딴 집 한채가 앙상한 나무 사이에 서 있다.
땅에는 녹다 남은 눈덩어리들이 지저분했고, 여기저기 웅덩이가 패인 길에 있었다.
깊은 비탄과 외로움이 풍기는 춥고 황량한 경치였다.

그런데 화가가 작은 집 창문에 촛불이 발산하는 노란 불빛을 그려넣자 그 황량하던 경치는 마치 마술을 부린 것처럼 생기를 띠었다.
비로소 사람이 살고 있으며, 생명을 지닌 활기찬 모습으로 변했다.
이것은 그림 속의 이야기지만, 촛불은 그가 비추는 모든 것들로 하여금 숨을 쉬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는 촛불이 참으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생일 잔치상에도 촛불이 켜져 있었고, 세상을 떠난 이를 추모하는 제삿상에도 촛불을 켜 놓았다.

지난 날 우리 어머니들이 정화수를 떠놓고 두 손을 비비며, 한이 맺혔거나 간절한 소망을 기원할 때에도 촛불이 켜 있었다.
모든 성스럽고 엄숙한 종교 의식에도 으레껏 촛불이 사용된다.
촛불은 삶과 죽음,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을 아우르면서 인생의 길을 함께 걸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일어나는 일인가? 요즈음 “촛불집회”라는 이름의 모임을 종종 볼 수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모임이, 매양 세상의 어둠을 환히 밝히는 축제가 아니어서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마침내 이러한 집회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까지 번져갔다. 종이컵에 담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온 학생들.
그들은 한 마당의 무도회를 즐기는 것이 아니었다.
밤의 장막 속에 희끄므레하게 촛불에 비치는 그들의 눈동자와 입술에는 발랄한 생기가 솟구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과 초조의 그림자가 어려 있었다.
이른 봄날의 화사함같이 피어나는 이들이 어찌하여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는가? 시험 제도는 언제, 또 어떻게 바꾸어질지 모르는데 어른들, 행정부나 정당대변인들은 부도수표 같은 말들만 늘어놓고 있다.

 물론 사회 생활에서 경쟁은 피치 못할 숙명임을 알고 있다.
푸른 하늘아래 사는 우리가 또 이런 원죄를 짊어지고 있다는 것은 커다란 고통이다.
그러나 경쟁은 정당한 규칙과 질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누구에게나 미리 알려지고, 정당하게 적용되면서 그에 따르는 준비를 하게 해 달라는 것이 그들의 요구이다.
젊은이들을 도외시하고 성을 굳게 쌓는다고 사회가 안정될 것인가? 거리에 나온 학생들이 들고 있는 촛불이 몸부림치면서 타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우리의 아픔이 아닐 수 없다.

김 영 환<전 오현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