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찜한 원 도정의 ‘박근혜 정부 데자뷰’

2014-11-06     제주매일
개운치가 않다. 원희룡 도정의 인사에 대한 느낌이다. 꼭 어디서 본 듯한 데, 먼저 본 듯한 상황이 마뜩치 않기 때문이다.

원희룡 지사는 5일 민선6기 3번째 제주시장 예정자로 김병립 전 제주시장을 지명했다. 고심의 결과다. 원 도정 출범후 한 달만에 낙마한 이지훈씨와 인사청문 후 자진 사퇴한 이기승씨에 이은 ‘삼수’로, 시장 공백사태도 2달을 넘어가는 상황이다.

장고 끝에 악수였다. 인물의 능력을 말하는 게 아니다. 상징성이다. 김병립 새로운 시장 예정자는 괜찮은 사람이다. 제주시의원을 거쳐 제7대와 8대 도의원을 지냈고 제주시장까지 역임했으니 경력은 훌륭하다. 제주시장에 넘칠 수도 있다.

그래서 ‘무난한’ 카드로 선택됐을 것이다. 허나 선택 말았어야할 당위성이 선택의 필요성을 덮는 듯하다.

우선 김병립씨는 ‘과거’ 사람이다. 4년여전 민선5기 우근민 도정 출범당시 제주시장이다. “고작 우근민 세력과의 협치냐”는 제주주민자치연대 등 시민사회 단체 논평들의 키워드는 ‘과거로의 퇴행’으로 읽힌다.

원 도정 사람들도 이것을 안다. 그래서 공직자 출신은 애초에 제주시장 후보군에서 ‘버린 카드’였다. 행정경험이 부족한 지사를 위해 취임 초 1~2년은 공무원 출신 시장도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제안에, 이들은 ‘행정 권력의 습관’을 협치의 걸림돌로 우려하며 저어했다.

그런데 전 제주시장 김병립이다. 돌고 돌아서 4년전으로 회귀다.

박근혜 정부도 그랬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월27일 세월호 참사의 책임에 대한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의를 수용, 사실상 경질했다. 그런데 2달을 돌고 돌아 6월26일 정 총리 유임을 발표했다.

고심의 결과다. 후임 안대희 전 대법관이 전관예우 등의 문제로 자진 사퇴한 뒤 전 중앙일보 문창극 대기자마저 ‘친일 역사관’ 논란 등으로 낙마하며 총리 공백이 2달을 맞을 때였다. 박 대통령이 고심 끝에 꺼낸 ‘무난한’ 카드였다. 국민들 눈에는 무책임하고 안일한 카드였다.

도민사회에 회자되는 ‘S라인’도 문제다. 늘씬한 여성의 몸매 얘기가 아니다. 인사를 좌지우지 한다는 특정 인맥이다. 김병립 후보자 지명 발표가 나자마자 새정치민주연합은 “S라인이라는 말이 공식 석상에서 회자될 정도”라며 원 지사 측근의 인사개입 의혹을 지적했다. 전 도정에서 이미 행정시장을 지낸 사람이 ‘언질’ 없이 원서를 냈겠느냐는게 그 이유다. ‘제주도의 S라인’은 정말 힘이 센 모양이다. 모 도의원이 행정사무감사에서 “송당초와 세화중·고를 나온 나도 S라인”이라고 ‘신고’할 정도다. 

물론 원 도정에선 아니라고 할 것이다. 청와대도 비슷하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이른바 ‘만만회(박지만·이재만·정윤회)’ ‘문고리 3인방(총무비서관과 부속실 1·2비서관) 등 비선의 인사개입 의혹에 대해 “절대 그런 일 없다”고 공언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 때지 않았는데도 연기가 난다면 굴뚝 주변 청소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때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도 있을 수 있다. 과거 모 대통령이 “나는 돈을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했을 때 국민들은 웃었다. 주변사람들이 챙겼다. 당시도 대통령 입장에선 아니 땐 굴뚝의 연기였지만 국민들에겐 타오르는 불길 위로 솟아오른 시커먼 연기였다.

이지훈 시장의 사퇴 때도 닮았다. 언론에서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상당수의 의혹이 사실로 확인돼도 원 도정은 묵묵부답이었다. 문창극 총리지명자가 친일행각 의혹에 대해 언론이 ‘증거’를 들이대고 국민여론이 완전히 돌아설 때까지 버티다가 자진사퇴 형식을 빌려 퇴장시킨 박근혜 정부와 닮아도 너무 닮았다.

그래서 찜찜하다. 잘되는 것의 데자뷰(deja vu·旣視感)여야 하는데 안 좋은 것을 닮아가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목적이 결과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결과는 ‘협치’라는 공허한 구호가 아니라 행동이다. 작금의 인사 난맥상이 원도정의 인재풀이 한정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프레임에 갇혀 인재풀을 한정짓기 때문은 아닌지 곱씹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