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신해철이 남긴 메시지
2014-10-30 제주매일
대학가요제는 첫 회 서울대학교 보컬그룹 ‘샌드패블즈’의 ‘나 어떡해’를 시작으로 노사연·배철수·심수봉·유열·이정석·조하문·015B·전람회(김동률)등 많은 뮤지션을 배출한 프로그램이었다.
그 대학가요제 출신 중에 대표적인 뮤지션이 지난 27일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마왕’ 신해철이다. 그는 서강대학교 철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8년 제12회 대학가요제에 ‘무한궤도’라는 팀으로 출전, ‘그대에게’라는 곡으로 대상을 받았다. 당시 20살의 신해철은 무한궤도의 리더로 작사·작곡은 물론 보컬과 기타·키보드까지 1인5역의 역할을 수행하며 ‘천재의 탄생’을 예고했었다.
그 신해철이 앞장서서 대학가요제 폐지를 반대하고 나섰다. 선후배들의 뜻을 모아 공연을 준비했다. 학창시절 대학가요제 노래들을 자양분으로 성장해온 필자에겐 그 공연에 연출로 참여하게 된 것은 영광이자 기쁨이었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신해철은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선배들을 위해 자신의 팀인 ‘넥스트’와 함께 반주를 하는 등 솔선수범하는 희생정신을 보여줬다.
대중에게 비친 이미지는 다소 자기중심적이고 고집이 세보이나 사실 그 부분은 자신의 음악작업에서 나타나는 모습이었을 뿐이었다. 그 외에는 남들에 대한 배려가 깊고 대변하는 기질이 많음을 몇 차례의 작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사실 단순한 가수가 아니라 스스로의 모든 곡을 작사·작곡한 천재적인 뮤지션이기도 하다. 그의 음악은 단순히 즐기기 위한 대중가요를 넘어 철학적 메시지를 담았다. 항상 자신과 세상을 반추하고 고민해 왔으며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적 사상과 자유를 갈망해왔다.
그의 대표 곡 ‘재즈카페’는 “우리는 어떤 의미를 입고 마시는가, ~ 하지만 내 노래는 누굴 위한 걸까”라고 화두를 던진다.
많은 가요가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을 노래한 반면 신해철은 철학도 출신답게 삶의 본질과 의미를 고뇌해 왔다.
1991년 발표한 ‘나에게 쓰는 편지’의 가사를 보면 또 다른 메시지를 담겼다.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라고 노래했다.
23년 전 이 노래를 발표할 당시 그의 나이는 23살의 청년이었다. 청년 신해철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니체처럼 분노하고 고흐처럼 불꽃같이 태우며 살고자 했던 그가, 그의 말대로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단지 먼저 그 곳으로 가버렸다.
그의 장례식장엔 많은 지인들이 몰려 불꽃처럼 사라진 그를 안타까워했다. 그중 평소 모습을 잘 보이지 않는 ‘가왕’ 조용필이 있었다. 2003년 조용필 데뷔 35주년 기념 공연이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릴 당시 공연의 연출이었던 필자는 조용필과 가수 중 각 세대의 대표적인 뮤지션을 1명씩 초대하기로 논의했는데, 조용필이 주저없이 초대한 가수가 신해철이다. 가왕이 마왕을 인정하고 초대한 것이다. 그 마왕의 발인이 오늘이다. 같은 곳인데 단지 조금 먼저 갔을 뿐이라 위안하며 그의 영면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