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때 주민 대피시킨 등대지기 행위는 ‘업무’”
법원, "업무상 재해 인정"
근무 대기 시간에 태풍을 대비해 마을 주민을 대피시키다 사망한 외딴섬 등대지기에게 '공무상 재해' 판결이 내려졌다.
전남 신안군 소흑산도의 항로표지관리소(유인등대)에서 11년째 등대지기로 근무하던 설모씨(당시 43세)는 지난해 8월7일 오후 2시 근무를 마치고 대기상태로 휴식에 들어갔다.
오후 3시쯤 등대에 마을 주민 이모씨가 찾아왔고, 이씨는 설씨가 해주는 이발을 마친 다음 등대에서 300m쯤 떨어진 바위로 낚시를 하러 나섰다.
당시는 태풍 '아타우'의 영향으로 파도가 높아지고 있던 상황.
등대 소장은 설씨에게 이씨를 대피시키라는 지시를 내렸으며, 설씨는 오후6시께 낚시 조끼와 반바지 차림으로 이씨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설씨도, 이씨도 등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설씨는 이틀이 지난 후에야 남쪽으로 1.6km 떨어진 곳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으며, 이씨는 시신초차 찾지 못했다.
유족들은 설씨가 공무 수행 중 사망한 것이라며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신청을 했으나 공단은 설씨가 사적인 행위를 하던 중 사망했다고 판단하고 유족급여 지급을 거부했다.
이에 유족들은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재판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권순일 부장판사)는 9일 "설씨는 비근무자로서 휴식 중 마을 주민을 대피시키기 위해 바다에 근접한 곳에 이르렀다가 실족하거나 파도에 휩쓸려 익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공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항로표지관리소 직원복무규정상 비근무자는 근무지의 지리적 특수성 등을 고려해 유사시 근무자를 보조하거나 그의 업무를 대행할 수 있는 지역에 대기하도록 규정돼 있다"며 "비근무자 상태의 직원이 소장의 지시에 의해 민간인을 대피시키는 행위는 복무 규정에서 정한 관리소 직원의 업무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