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시대’ 도지사에게 드리는 ‘잔소리’
2014-10-16 제주매일
‘전두환 정권용’이었던 관사를 포기한 도지사, 집무실에서 커피 내려주는 남자, 소형자동차 타고 출퇴근하는 도지사, ‘자동차랠리’에 참여하는 역동적인 남자, 구좌, 성산의 바람을 가르며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마라톤에 참가하는 도지사, 공무원들에게 ‘칼퇴근’하라며 ‘디제이’로 변신하는 도지사. 대변인의 ‘대필’이 아닌 직접 ‘페이스북’과 ‘트위터’와 ‘카톡’으로도 소통하는 도지사.
그 진의가 어디에 있든 김태환, 우근민 도지사 시절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도지사의 새롭고 멋진 모습을 환영한다.
그런데 취임 100일까지의 원희룡 도지사의 행보는 여전히 의문이다. 시중의 과대 포장된 과자 봉지에 빗대어 화려한 포장지를 뜯어보니 질소 성분만 넘쳐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원희룡 도정의 상징화된 정책기조는 부르기는 낯설지만 ‘협치’다. 강정마을회관에도 ‘협치’를 새긴 원 도정의 액자가 오롯하게 걸려있다.
도지사 퇴진 깃발이 휘날리던 마을회관의 풍경을 복기해보면 ‘격세지감’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원 도정의 ‘협치시대’는 요원해 보인다. ‘협치 인사’는 현재까지 실패작이다. 날을 세우면 ‘협치’도 아닌 ‘통치’도 아닌 인사였다. “그냥 원희룡 믿고 맡겨 달라”고 하는 편이 좋았다.
경쟁후보의 인수위원장 영입은 큰 이슈가 됐으나 상대 정당에 대한 배려나 사전 협치가 전혀 없었다.
외형상 ‘시민사회와의 협치’, ‘언론과의 협치’ 모양새였던 임명제 제주시장의 인사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제주시장 임명 ‘삼수생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는 자기고백을 할 상황까지 왔다. 공직사회 인사 역시 요약하면 김태환 도정 세력의 부활, 그 이상도 아니었다.
해군기지 갈등의 핵심인사를 도정의 핵심 요직에 등용하면서 해군기지 갈등해결을 말하는 건 자기모순이다. 산하 기관 인사 역시 뚜렷한 기준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선거사무장을 기관장으로 맡기면서 “선거공신 등용은 하지 않겠다”던 도지사의 다짐을 누가 믿겠는가?
취임식 날 다정하게 손잡고 환한 미소를 도민들에 안겨줬던 교육감과의 협치는 ‘언론용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교육재정에 있어서는 ‘갑’의 위치인 원희룡 도지사는 최근 이석문 교육감과의 정책협의회에서 제안했던 고교무상교육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대신 “현재 지원하고 있는 무상급식 예산이나 똑바로 쓰라”는 엄포로 끝난 모양새다.
제주도의회와의 협치는 인사청문회를 전격 합의했던 ‘깜짝 협치’에서 진도를 못나가고 있다. 새누리당이 집권하고 있는 도의회임에도 벌써 원 도정을 ‘협치의 모범’이 아닌 ‘무단통치세력’으로 규정할 정도다. MB정권의 대변인 출신까지 도민세금으로 급료를 주는 정무부지사로 발탁했지만 무용지물이다.
협치의 기본은 자신이 가진 권력을 내려놓고 나누는 것이다. 인사, 예산, 조직 등 도지사의 핵심 권력을 꼭 붙잡은 채 협치를 말한다면 이는 공허하다.
역대 제주도정의 정책 목표 중 가장 아름다운 표현은 원희룡 도정에서 나왔다고 단언한다. ‘자연, 사람, 문화의 가치를 키우는 제주’라는 목표를 실현한다면 국제자유도시로 상징되는 자본 중심의 제주사회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최근 마련된 원희룡 도정의 ‘제주 3·6·5 약속 14개 분야·105개 사업’ 공약 이행 계획 속에는 도민들과 함께 감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내용이 매우 많다. 큰 설계도는 그려졌다. 다행스러운 일은 임기가 앞으로도 1300여일이나 남아 있다. 원희룡 도지사는 이제 ‘드립 커피’ 보다 ‘정책 실천’으로 도민과 협치하는 시대를 열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