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무색 ‘외래어·외국어’ 간판 홍수

한글 파괴 간판들도 ‘눈살’
순 우리말 간판 눈길 끌어

2014-10-08     김동은 기자
제주시내 도심 곳곳에 외래어·외국어 간판이 홍수를 이루면서 한글날 제정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568돌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제주시 연동 바오젠 거리. 이 일대 가게 간판 상당수가 외래어·외국어로 돼 있는 등 우리말을 사용한 간판을 찾기 어려웠다.

실제 ‘부페(뷔페)’, ‘센타(센터)’ ‘바베큐(바비큐)’ 등 잘못된 외래어 표기는 물론 외국어 발음을 그대로 적은 간판이 거리를 점령하고 있었다.

게다가 표기된 내용으로는 무엇을 하는 곳인지 도통 알 수 없는 간판이 있는가 하면 우리말을 소리 나는 대로 사용한 한글 파괴 간판도 눈에 띄었다.

더욱이 이들 간판이 중국어와 일본어 등 외국인 관광객의 편의만 고려하다 보니 오히려 한국인들이 불편을 겪는 등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이경철(31·제주시 도남동)씨는 “도가 지나칠 정도로 외래어·외국어로 표기된 간판이 많은 것 같다”며 “뜻을 도무지 알 수 없는 간판을 볼 때마다 인상이 찌푸려진다”고 말했다.

이날 만난 한 태국인 관광객은 “한국적인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서 제주를 찾았는데 도대체 어느 나라에 온 것인지 모르겠다”며 황당해했다.

이처럼 외래어·외국어 간판이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가운데 순 우리말로 가게의 특징을 잘 나타낸 간판이 있어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제주시내 상가 밀집지역에서는 외래어·외국어로 표기된 간판들 사이로 친근감을 주는 순 우리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아름다운 세상을 일컫는 순 우리말인 ‘아름누리 꽃방’은 꽃으로 세상을 밝힌다는 꽃집의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아름누리 꽃방’을 운영하는 한옥경(48·여)씨는 “외래어 간판 홍수 속에 순 우리말 이름을 생각하다가 평소 세상을 뜻하는 ‘누리’라는 말을 좋아해 ‘아름누리’라고 짓게 됐다”며 “기억하기도 쉽다 보니 한 번 찾은 손님은 단골이 된다”고 웃어보였다.

정인환 한글문화연대 운영위원은 “거리에 나가 보면 간판의 절반 이상이 외래어·외국어로 표기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며 “표기법도 제각각이어서 언어 본래의 기능인 의사 전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간판이라는 것이 무의식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만큼 언어적인 측면에서도 외래어·외국어 간판이 많으면 우리말 문화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며 “가급적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우리말을 쓰고 외래어를 사용할 경우 표기법에 맞게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매일 김동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