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보다 소중한 ‘최선’

2014-09-30     제주매일

인천아시안게임이 막바지다. 지난달 19일 개막해 오는 4일 폐막이다. 45개국 1만4500명이 참가, 36개 종목에서 439개의 금메달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스포츠에서 최고는 금메달이다. 참가에 의의가 있다곤 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꼴찌에게 박수는 있어도 환호는 없다. 세상인심이다.

하지만 이번 아시안게임은 이상하다. ‘최고의 결과’가 아니라 ‘최선의 과정’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야구처럼 사회인으로 구성된 일본 ‘국가대표’를 어린애 손목 비틀듯 이기고, 이겨도 본전인 대만을 꺾고 따낸 금메달이어서가 아니다. 그런 대만과의 결승전도 마지막 아웃카운트까지 가슴을 졸인 것은 ‘은’보다는 ‘금’이 주는 기쁨과 감동이 크기 때문이었다.

현재 우리나라 금메달은 50개 내외. 모두 그 숱한 시간을 땀과 열정으로 일궈낸 금빛 결실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한 감동의 ‘건방진’ 메달이 있다. 세계챔피언이면서도 아시아 챔피언도 되지 못한 ‘못난이’ 박태환의 은빛·동빛 메달이다.

이번 박태환의 성적은 노골드(no-gold)에 은메달 1개와 동메달 5개다. 이름값에 비해 너무나 초라하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금메달은 차치하고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선 금 3개 등 7개(은 1·동 3),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선 2개 대회 연속 3관왕에 은·동 각 2개 등 7개의 메달을 따냈던 그다.

그래서 성에 차지 않는다. 그런데 가슴은 먹먹해 진다. 25살 청년에 불과한 데 크게 느껴진다. 그 누구를 탓하지 않고, 결과를 고맙게 받아들이는 그다. 런던올림픽 이후 포상금 지연지급 등 ‘괘씸죄’ 의혹이 공공연했던 대한수영연맹에도 감사를 표할 따름이다.

아시안게임 2연패로 ‘자기 종목’이던 자유형 200m에서 일본의 하기노 고스케와 중국의 쑨양에 이어 3위에 그쳤음에도 박수를 보냈다. 하기노와 쑨양이 자국에서 받은 많은 스폰서 등 전폭적인 지원이 부러웠을 만도한데 아쉬움조차 표하지 않았다. 쑨양이 일부 종목을 포기하고 집중하는 사이 박태환은 가능한 많이 출전, 혼계영 400m 동메달에 기여하며 “박태환 덕분”이라는 동료들의 찬사를 듣기도 했다.

대한민국이 박태환에게 빚진 느낌이다. 많이 부족한 여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큰 감동을 줬다. 하지만 많은 것을 갖고 있음에도 ‘세월호 사태’에서 존재감이 사라져버린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오버래핑 됨은 슬픈 일이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이튿날인 4월17일 오후 진도체육관을 방문, “최후의 한 사람까지 구조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움직일 수 있는 최고 권력인 대통령의 공언이었다. 그러나 식언이 되고 말았다. 최후의 한사람이 아니라 최초의 1명도 구조되지 못했다. 단원고 수학여행단 250명 등 총 304명의 생명이 스러져가는 현장을 피눈물로 지켜봐야만 했다.

그리고 세월호 사태는 진행형이다. 세월호 유가족 입장에서 보면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보수의 압박이 공공연해졌다. 피로감으로 국민들의 관심도 떨어지고 있다. 그래서 대통령이 풀었으면 했다. 한마디면 됐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둘러싼 ‘진보’와 ‘보수’간 다툼도 없을 것이다. 엄청난 세비를 받고 있는 국회의원들도, 국회가 정상화된다고 일을 정상적으로 하리라 결코 믿지는 못하지만, 등원은 할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기소권을 주자는 요구에 “대통령의 결단 사안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현재의 사태가 대통령의 책임만은 아니다. 세월호 사태로 숨죽이다 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 승리하자 오만해진 새누리당과, 섣불리 합의했다가 “없었던 일로 해달라”며 떼를 쓰다 적전분열하며 무력해진 새정치민주연합도 ‘훌륭한’ 조연들이다.

그래서 슬프다. 2014년 10월 대한민국 청년 박태환은 가진 게 부족해도 혼자서 국민들 가슴에 뭉클한 힐링(healing)을 전하는데,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가진 정치권은 수백명이 모여서도 국민들 가슴에 킬링(killing)의 상처만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