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동심에 '대못' 박아
학생실정 무시한 일방적인 '가정환경조사'
2005-05-04 김은정 기자
잠시 말문을 잇지 못한 채 한참을 생각에 잠기더니, 2년전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불쑥 종이 한 장을 내밀며 다짜고짜로 꺼내는 말이 '아버지 이름을 쓰라는데 어떻게 써야될지 모르겠다'는 것. 미영씨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해 종이만 들고 부엌으로 가버렸다.
새 학년이 시작되면 연례행사로 이어져 오는 '가정환경조사'.
최근 일부 학부모들의 반발로 인해 시행하지 않는 학교도 있으나 아직까지 대부분의 초.중.고교가 학생들의 가정환경을 조사, 이혼부모와 자녀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학년초가 되면 이혼부모들은 자녀들의 '가정환경조사' 때문에 애를 먹는 한편 아이들은 의례히 주눅 들게 돼 자칫 학교생활부적응 등의 문제를 낳을 우려가 있다는 것.
호주제 폐지로 신분등록부에는 부모나 가족의 이혼, 재혼이 기재되지 않아 사회적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되지만 여전히 가정환경조사는 이혼부모 자녀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 3월 서귀포시 한 초등학교 입학원서의 내용 중 부모님의 학력을 비롯, 직업, 직위, 재산정도 등을 기입하게 한 것으로 나타나 이같은 '가정환경조사'의 심각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가정환경조사는 한창 새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는 시기인 학년초에 실시, 이혼부모 자녀들을 위축하게 만들며 양친의 존재여부를 비롯해 그외 따라오는 일부 적정 수위를 넘는 가정환경조사는 이혼부모 자녀들에겐 고통이다.
이같은 가정환경조사에 대해 학교측은 맞벌이 부부 등 부모의 인적사항을 확인해 학생의 학습환경을 진단하고 어머니회 등 학교운영에 참고하기 위해서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교육과정과 학교운영에 대한 참고 수단치고는 지나치게 구체화, 세분화된 조사항목들로 이혼부모 자녀들에게 '계층화'를 심어주는 등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일부 교사들의 차별의 소지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전교조 제주지부에 따르면 해마다 같은 논란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가정환경조사서'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이혼가정의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핏줄과 관련된 문제는 말 많고 탈 많은 법이다.
이혼부모와 그 자녀들이 살면서 겪고 느끼게 되는 숱한 고민과 상처.
그러나 아직까지 학교내 실정은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여전히 아득한 수준.
미영씨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시기에 이혼가정의 아이들에게 가정환경을 조사하는 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한번쯤 학교에서 생각해야 한다"면서 "앞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항목을 삭제하거나 또는 보호자 연락처 정도만 받아서 부모와 직접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교육환경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끝을 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