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리끼리 말고, 너도나도 한가위

2014-09-05     제주매일
올해는 한가위가 이르다. 덕분에 더위를 많이 타는 아들들에게 한복을 입히는 일은 물 건너간 것 같다. 전통을 익히는 즐거움을 의복으로 가르치는 일은 어렵게 되었지만 형식보다 중요한 것이 남아있다.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뿌리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다. 어른끼리 애들끼리 따로 놀지 말고 함께 모여 수다를 떨면서 말이다.
족보 검사를 하라는 게 아니다. 조상에 대해 가르치는 일이 단순히 족보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아주 재미없는 수업이 될 것이다. 그러한 교육은 가족 공동체를 굳건히 하기보다는 가장 유명한, 한마디로 잘 나간 조상 찾아가기에 다름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남성들 사이에 성이 같은데 우연히 항렬도 같으면 눈이 둥그레지며 서로 이것저것 물어 보다가 “아이쿠우~!” 하는 감탄사와 함께 갑자기 형, 아우, 삼촌이 된다. 이쯤 되면 ‘인간이란 가장 가까운 유전자에게 자신도 모르게 끌리게 되어 있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경을 허문 사랑, 원수 집안 자식들의 죽음을 불사한 우정, 또는 친 외삼촌보다 옆집 아저씨를 더 좋아하는 우리 아들들을 보면 그것도 타당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매우 냉정하게 생각해보자면, 털끝의 먼지만큼이라도 친근함이 있으면 언젠가 자기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리라는 기대감이 생겨서 그러는 건 아닐까? 사람이 공통점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고 친근하게 대하는 일이야 더 할 수 없이 좋은 일이다만 나와 다른 타인을 배척하거나 공정함을 잃을 수도 있기에 위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아들들이 뿌리를 찾아가길 바란다. 자랑할만한 그러나 잘 알지도 못하는 조상을 찾는 일은 허상이다. 위로 3대까지 조상님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선 그들의 족보에 나오지 않는 삶을 파헤쳐야 한다. 살아계신 일가친척들과 가까운 조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주 실체적이며 소설보다 흥미진진한 사실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중 재미있거나 교훈이 되는 이야기들을 아이들에게 들려준다면 조상에 대한 부끄러움이 생기던, 존경심이 들던 자기에 대한 존재감에는 분명 차이가 생길 거다.
나는 아이들에게 지금은 돌아가신 내 어머니 아버지가 살아온 길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들이 어떻게 일제시대를 견디고 한국 전쟁을 겪어냈으며 산업시대를 지나 지금의 가족을 일구어냈는지부터 소소하게는 무얼 즐겨 드셨고 얼마나 웃음을 못 참는 분들이었는지까지, 그리고 나와 내 신랑의 첫 만남에 대해서도 말해줄 거다.
그다음 할 일은 어딘가에 그런 사실들을 적어놓는 것이다. 이러한 공부는 다음 대에도 이어져야 하므로 국가의 역사 못지않게 가족사를 기록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결국 조상을 배우는 일은 남과 나를 구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존재를 동경하거나 식별하는 기준이 천박해지지 않고 좀 더 따뜻하면서도 공정함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핏줄이 아닌 삶의 역사를 알게 될 테니까.
아들들아! 혹시 네 조상님들이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부끄러워하거나 괴로워 말길.
혈통은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땀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돈키호테가 그러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