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권하는 사회
2014-08-27 제주매일
어지간한 집들은 작은 도서관을 꾸밀 만큼 다양하고 많은 책을 구비하고 있다.
물가가 오르고 월급이 적어도 아이들 교육에 필요한 거라면 눈물겹게 노력하는 우리나라 부모님들, 그런 어른들이니 책은 과자처럼 먹고 없어질 것도 아니고, 한 번 사 놓으면 두고두고 애들 교육에 도움이 된다며 사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책은 쏟아져 나온다.
몇 달 전에 사놓은 책보다 더 좋은 책이 이달에 나오고, 하물며 비싸게 샀는데 아이들이 열심히 안보면 괜히 아이들에게 화도 내게 된다. 베스트셀러는 왜 그리 많은지, 큰 상을 받은 책이라면 꼭 읽히고 싶은 마음에 또 들여놓게 되고, 이러다보니 집집마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이 다 비슷비슷할 수밖에 없다.
나는 연극인이지만 책놀이지도사이기도 하다.
그림책을 유난히 좋아하기도 했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치면서 책을 통한 연극놀이를 하게 되면서 책놀이지도사가 됐고 이제는 책놀이지도사를 양성하는 교육도 하고 있다.
엄마들을 만나면 늘 하는 말이 있다. 책은 가구도 아니고 장식품도 아니라, 소모품이라는 말. 아이들과 책을 통한 여러 활동을 함께 하면서 책을 좋아하게 만들고 후에는 좋은 독자가 되게 도와주는 것, 책 읽는 일이 자발적이고 즐거운 모험이자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기쁨과 설레임의 과정이 되게 하는 것, 이게 책놀이지도사가 하는 일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책을 권하는 사회다.
하지만 아이들은 책을 싫어한다.
주말에 도서관에 가보면 아이들과 함께 와서 책을 고르는 부모들로 넘쳐난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엄마는 책을 열심히 고르는데 아이들은 만화책을 읽거나 닌텐도 같은 오락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독서인지 알 수가 없다. 독서를 한다는 것은 좋아하는 책을 찾고 그 책과 만나는 일까지 포함한다.
도서관에 왜 가는가, 빼곡히 꽂혀있는 서가를 누비며 책들을 만지고, 넘겨보고, 그러다가 맘에 드는 책을 만나는 경험을 하러 오는 것인데, 부모가 알아서 책을 고르고 아이는 부모가 주는 책을 읽기만 한다. 이런 경험이 과연 아이들로 하여금 책을 좋아하게 만들고 스스로 책을 고르고 읽게 만들 수 있을까?
책을 많이 읽히는 것보다 아이와 함께 책에 대해 어떤 추억을 나누고 있는가를 돌아다보자.
아이와 통하고 아이와 같이 부대끼면서 놀아도 보자, 이런 경험이 부모와 함께 한 추억으로 오래 남을 것이고, 특별한 유대로 엮어줄 것이며, 아이가 책과 오래오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 더 중요한 것, 아이보고 책 읽으라고 하고 엄마는 드라마나 보고 책 한권 안 읽는다면, 아이들은 절대로 독서를 즐기지 못한다라는 사실. 여름이 가기 전에 책 한권 골라 탐독해보라, 자연스럽게 아이도 그림책을 들고 와 옆에서 함께 읽게 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