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正義)

2014-08-20     제주매일
정의. 바를 정(正)자, 옳을 의(義)자. 참 좋은 단어이다.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정의를 지키려 싸운다” “정의를 위해서는 목숨도 바친다”는 말을 수없이 듣고 배우며 자라났다.
더구나 6·25가 한창일 때 초등학교를 다녔기에, 당연히 정의는 우리의 편이며 그래서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는 명제를 필연으로 알고 믿을 뿐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세월호’같은 비리와 부정이 정의를 압도하고 말았다.
지금 우리사회 어디에도 정의를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정치·경제·문화·교육 등, 그 어느 분야에서도 정의가 승리하기는커녕 패하고 있다. 불의가 판을 치고 불신이 팽배해 있다. 하기는 정의 아닌 정의를 앞세우며, 강권통치를 휘두르던 시절도 있었다. 박정희대통령 시해 이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쥔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며 내놓은 구호가 다름 아닌 ‘정의사회 구현’이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정의의 의미는 뭔가. 정의가 도대체 무엇이 길래, 그토록 목말라해 하는 것인가.
한 동안 미국 하버드대학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린 적이 있었다. ‘정의를 갈망하는 우리 국민의 정서를 반영한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부도덕한 세태에 얼마나 염증을 느꼈으면, 한권의 번역서로 정의의 열풍을 불러 일으켰을까.
정의는 누구나 쉽게 사용하는 말이긴 하나, 정작 정의를 확실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개념정의(定義)를 명확히 하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우리의 경우 ‘정의’라는 두 글자는 개화기에 들어서, 영어 ‘저스티스(justice)’를 번역한 것으로 돼있다. 1891년 간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영한사전에는 이를 ‘도리·의·의리’로 풀이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당시까지만 해도 ‘정(正)’과 ‘의(義)’를 합성해 쓰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정의를,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각자가 자기의 본분을 다하면서, 남의 직분을 침해하지 않는 것’이라 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사회의 기본질서’라고 말했다.
맹자는 ‘사람이 마땅히 가야할 옳은 길’이라고 하면서, 생(生)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의(義)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어쨌든 정의는 ‘바르고 옳은 것’ ‘바르고 옳은 상태’를 뜻한다. 따라서 정의는 정당성과 함께 공정·평등·형평성을 주된 내용으로 하게 된다. 예부터 사람들은 ‘본유(本有)적 정의’ 즉, 논리적 증명이 필요치 않은 정의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없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살아왔다. 확신이 있었기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후의 승리는 정의의 것’임을 자신 있게 강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동양에서는 의(義)를 더욱 존중한다. 정의를 위해 자원한 군사를 의병(義兵), 정의로운 일을 일으키는 것을 의거(義擧), 정의에서 생기는 용기를 의용(義勇), 정의로 인해 발동하는 분노를 의분(義憤)이라해 적극 권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의로운 사람을 의인(義人)이라 하고, 그 중에서도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를 특별히 의사(義士)라 호칭하며 추앙(推仰)하고 있다. 안중근 청년은 조국을 살리려 단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던졌다. 정의로운 투쟁을 한 것이다. 진정한 의인이요, 의사다.
요즘 나라 안팎 사정이 시끄럽다. 볼썽사납다.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니다. 성경에 “의로운 사람 10명만 있어도 ‘소돔성’을 멸망시키지 않으리라”(창세기 18:32)는 구절이 나온다. 설마 우리 대한민국에 의인 열 사람이야 없으랴마는, 정의로운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그리워지는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