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에 서서

2005-04-21     제주타임스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서서 어느 한쪽을 결정해야 하는데, 때로는 이쪽도 저쪽도 취할 수 없는 진퇴양난에 처해질 때가 많다. 
특히 이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혼돈의 사회, 흔들리는 사회, 왜곡의 사회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나의 사안을 놓고도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진리인지 비진리 인지, 화합인지 야합인지, 지혜인지 계략인지를 구분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이쪽 사람 말을 들으면 이 말이 옳은 것 같고, 저쪽 사람 말을 들으면 저 말이 또 옳은 것 같아 이 사회에서 중심에 서는 것이 참으로 어렵지만 절실히 필요하다.

동양에서 자주 이야기 하는 중용(中庸)은 어느 쪽으로든지 치우침이 없이 중정(中正)함, 넘치지 않고 모자라지도 않은 가장 알맞은 상태를 말한다.
사실 서로가 부대끼며 사는 이 세상에서 절대적으로 좋고 나쁨이나 절대적인 선악(善惡)은 없다. 모든 것은 우리가 어느 각도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심을 절대 다수가 있는 곳으로 생각하기 쉽다. 사람들은 그저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이면 그것이 중심인 양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다수가 생각하고 선택하는 곳을 선택하기 싶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류를 잘 따라가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곳이 항상 중심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중심은 중도노선도 아니다. 양극단은 안되니까 적당히 반반식 서로 타협하고 양보해서 중간쯤에서 해결하려 하기 때문에 중간과 중심은 다르다. 중심은 독선도 아니다. 자신의 선택이 옳고 제 아는 것, 제 잘난 것으로 꽉 차서 무조건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앞장서는 독선은 더욱 아니다. 독선과 독주와 독재는 한 쪽일 수밖에 없는 것을 가지고 스스로 뽐내고 교만해져 인위적으로 만든 강요에 불과하기 때문에 중심이 아니라 중심을 이탈하게 만들어 발전을 중지시켜 버린다.

넘쳐나는 상태를 살펴보아도 중심이 아닌 것을 금방 깨달을 수가 있다. 넘쳐난다는 것은 풍요(豊饒)가 아니라 불행의 원인을 가져온다. 기름진 음식, 맛있는 음식을 너무 많이 먹고 마시면 넘쳐난 영양과 소화되지 않은 음식은 오히려 독이 되어 우리의 몸을 파괴시킨다. 과음은 우리의 몸을 해롭게 하고 과속은 사고의 원인이요 과욕은 패망의 원인이다.
그러면 중심은 무엇일까?
중심이란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의 앞에, 자신의 거울로 자기 자신을 비추어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참된 판단과 결단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거울은 모든 사물을 비추어준다. 밝은 거울은 사물을 밝게 비추어주며, 어두운 거울은 사물을 밝게 비추어 주지 못한다. 거울에 먼지가 많이 끼면 흐리고 어두워져서 사물이 바로 비치지 않는다. 그래서 옛사람은 명경지수(明鏡止水)를 강조하였다. 흔들리지 않고 참된 판단과 결단을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항상 밝은 거울과 같고 조용한 물과 같이 유지해야 한다.
사람은 종종 자신의 처지가 달라지면 자신의 태도를 바꾼다. 또한 다른 사람의 상황이 바뀌면 그를 대하는 태도도 바꾼다. 이것은 일반인의 보편적인 병이다. 중심에 서게 되면 이쪽 저쪽 양면을 모두 다 볼 수 있는 지혜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중심에 선 사람은 흔들리지도 교만하지도 않는다.

지금 우리는 ‘행정계층구조개편’이라는 중요한 선택과 결단의 시기에 와 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중심에 서서 진정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는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인 것 같다.

이 광 래<제주관광대 사회복지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