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와 無知의 수수께끼

2005-04-19     김계홍 논설위원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안다’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 오히려 화근이 될 수도 있다. 이를 두고 “식자우환(識字憂患)”이란 말이 나왔다. 이 는 모르면 약이 되고 알면 걱정이 생긴다는 말이다. 모르면 책임도 의무도 없어질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이 말은 식자를 전제로 우(憂)는 원칙이 아닌 예외성에 초점을 둔 말이기도 하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는 것이 힘’이란 말은 진리다. 앞에 닥쳐 올 일을 모르기 때문에 즐겁게 보내는 것이 인생도 있다. 존경하는 사람에 대한 추한 비밀을 알게될 때, 특히 믿었던 사람인 경우 그 고통은 더 크다. 불치의 병이라면 모르는 게 좋을 수도 있다.
광신도들이 “지구의 종말”을 믿고 죽음을 선택한 것은 잘못을 옳은 것으로 알게된 것이 화근이 된 사례다. 신의 심판이나 생활법률도 모르고 지은 죄는 처벌을 감·경 한다. 우리형법 제15조에 “죄가 되지 아니할 것이라고 안 것이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 그 행위는 불법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전체주의 국가가 대외용으로 자유권을 인정한 헌법과 법률을 제정해놓고 국민에게는 공표(북한 ‘04,8월 대중용 법전 발간)하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 국가나 자치단체가 국민에게 법과 제도를 알리는데 소홀히 하여 문제가 되는 수도 있다. 나쁜 제도나 법의 개폐도 같은 성격이다.

두 개념의 얼굴

이상의 이야기들은 한 단면만을 소개한 것 일 뿐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 타 생물 보다 더 알고, 알기 위해 도전 해온 역사의 주역이다. 작게는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정보에서 시작, 크게는 큰 역사의 창조에 이른다. 발명·탐험가들이 모름을 깨쳐 발명이나 발견을 통한 희열과 인류에 대한 공헌하였다.
산악인이 목숨을 건 미지의 정산정복을 통하여 승리감을 만끽하며 인간에게 용기를 준다. 과학기술이나 의약분야에서 인류를 위하여 연구실에서 평생 또는 대를 이어 고생을 하는 것도 이런 도전이다. 비유가 될지 모르나 국정감사에서 비밀이 폭로되자 여당은 비밀누설이다. 야당은 국민의 알 권리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헌법이나 법률에 의한 알권리 보장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의해 비밀을 지켜주어야 하는 의무도 간과해선 안 된다. 인간에게 가장 귀중한 것은 인간의 자유가 귀중한 것은 자유와 앎의 향유다. 인권보장에서 신체적 자유도 귀하지만 무지로부터의 자유도 귀하다. 그리고 가난, 억압, 질병으로부터의 자유도 인권의 범주에 포함되었다. 더 귀중한 것은 자유다. 사람은 꼭 알게 하고 앎 만치 책임지고 할 일을 다하게 하자는 것이다. 몰라도 될 것을 쫓다 병이 되는 것은 경우에 따라 평가가 다르다.

이렇게 지와 무지의 두 얼굴을 깨닫고 바르게 실천하는 것이 인류의 역사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보화시대에 통신전달수단의 발달은 앎의 대중화에 혁명적인 기여를 했으나 모르는 갈증의 폭이 커진 점은 수수께끼다. 학문이나 과학기술도 그 깊이가 커질수록 앎의 부족을 더 깨닫게 됨은 경험철학이다.

하나되는 조화

 그래서 앎과 모름의 조화가 귀중하다. 생활법률이나 제도의 자즌 변화의 불가피성 속에 앎과 모름이 아노미, 불확실성현상이 그 만큼 크게 일어난다. 인생도 알면 알수록 모르는 우환이 생긴다. 정보화 속에 이를 자기화 하여 식자우환이란 역기능을 지혜롭게 이겨가야 한다.
모르기 때문에 일러나는 슬픔보다는 기쁨이 도래를 희망으로 삼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인간을 이렇게 설계하여 창조한 위대성에 감탄하곤 한다. 새 밀레니엄 시대에 들어 정보의 지구촌과 더불어 미래학자들이 예언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암, 에이즈, 사고, 질병 등 단명원인의 제거로 인간수명이 금세기에 150세 이상 보편화되고, 에너지와 식량인공생산이 가능할 것이란 꿈은 비극인지 모른다.

그리고 DNA검색으로 혈통확인이 점증하는 혼란 속에 수 백년 전의 조상까지도 혈통의 진부를 확인 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종합된 컴퓨터 등 자동기계검진과 처방으로 실수도 최소화할 것 같다. 가정생활에 부엌일을 대리할 ‘유비쿼터스’란 시스템으로 자동처리가 가능해진다. 사망예정일까지 판단이 가능하게 될 때 과연 식자는 환희일지 우환일지 모른다. 환경이 다른 곳에서 살면 인식도 다르다. 인간은 무한대의 전지전능(全知全能)의 손바닥을 벗어나기에는 무력한 존재다.

 그 길을 2백만 년 전의 직립인류사와 함께 지금까지 걸어왔으며, 앞으론 더욱 다방면에 걸쳐 빠르게 닦아올 것이다. 이런 현상을 현명하게 수용해 나갈 책무가 인간에게 있다.
 사람만이 사람의 지나나 무지의 한계를 깨달아야할 존재다. 그리고 이런 아노미현상을 인간답게 소화하는 지혜의 필요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면서 복합적인 차원에서 세상을 되새겨 보았다. 인간은 개인적으로 꿈과 낙관·비관이란 가치관을 가진 삶의 정·반합을 인식하는 존재라고 나름대로 귀결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