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 하영 납서, 돈주쿠다'
요즘 인구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언론에서도 심심치 않게 인구 문제의 분석기사를 싣는다. 여기에는 두 줄기의 큰 흐름이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말미암아 2010년부터 본격적인 인력난을 껶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몇칠전 중앙 일간지에 재미있는 일단기사를 보고 인구문제의 심각성을 다시한번 되돌아 보게 되었다.
‘축하금 드릴테니, 아이 많이 낳으세요.’ 라는 제목아래, 대구광역시 달서구 송연1동 주민자치위원회가 출산 축하금을 지급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다. 3개월 거주한 주민이 둘째를 낳을 경우 20만원, 셋째와 넷째 아이를 낳을 경우 40만원의 출산 축하금을 지급키로 했다는 내용이다. 민간단체가 출산장려 차원에서 현금을 지급키로 한 것은 전국에서 이번이 처음이란다.
우리 선조들은 대가족 제도를 전통적으로 선호해 왔다. 조상의 묘를 명당자리에 모셔야 집안이 발복하고 후손들이 번성한다는 인식이 대가족 제도의 힘이었다. 보리고개를 겨우 넘기던 농경시대에는 집집마다 형제들이 흥부네 아이들처럼 북적거렸다. 찢어지게 가난해도 먹을 건 타고 난다는 생각이 팽배한 시절이었다. 남아선호 사상도 한몫했다. 요즘 신문부고란에 자식과 손자들 이름이 몇십명씩 오르는 것도 이러한 결과들이 아닐까 싶다.
정부가 이러한 가족제도로는 가난을 추방할 수 없다는 인식으로 가족계획 정책을 펴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초부터였다. 가족계획 표어의 시대별 변천사를 보면, 인구억제 정책에 얼마나 매달렸는지 알 수 있다. 1960년대는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질 꼴 못 면한다.’는 표어를 내걸고 강력한 산아제한 운동을 전개했다. 역시 배경은 가난의 추방이었다. 지금의 60대들이 이 시대의 주인공들이다. 1970년대에는, ‘딸 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가 등장한다.
가족계획 표어의 백미로 꼽히는데 50대들이 이를 실천했다. 예비군 훈련장에 가서 정관수술 대상자로 뽑히면 훈련을 면제해 주던 시절이었다. 관청같은 직장에서는 서약서를 받으면서까지 정관수술을 독려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 지금의 40대들은,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가족계획 표어의 실천을 압박 받으며 살았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아들바람 부모세대, 짝궁없는 우리세대’라는 표어가 등장했다.
이러한 가족계획 정책으로 199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졌다. 정부는 저출산과 노령화가 산업 경제와 연계되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기 시작했다. 정부는 2000년대에 이르러 인구억제 정책의 반세기를 청산하고, ‘한 자녀보다는 둘, 둘 보다는 셋이 더 행복합니다’는 출산 장려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성공한 인구억제 정책이 실패한 정책으로 낙인 찍힌 셈이다.
가족계획은 소위 ‘외동이’ 시대를 열었다. 어른들이 자식들에게 아이 셋만 낳으라면, 정색을 하고 어떻게 키우느냐고 항변하는 풍경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사회 문화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조상을 섬기는 전통미덕은 장묘문화를 화장문화로 바뀌게 하고 있고, 고조까지 지내던 제사도 친부모에 한해서만 지낼 날들이 오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외동이’를 둔 아빠 엄마들이 노인이 되었을 때이다.
‘장병에 효자없다’.는 말이 있듯이 노부모들이 늙고 병들었을때 외아들, 외딸 혼자 짊어 질 짐은 정말 무거울 것이다. 형제도 없고, 삼촌도 없고, 사촌을 비롯한 친척들도 없이 홀홀 단신으로 어려운 세상살이를 헤쳐 나갈 모습을 상상하면 부모가 자식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셈이다. ‘비온 날 외상주’라는 속담처럼 처량한 모습들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애기 하영 납서, 돈 주쿠다.’ 실감나는 말이다.
젊어지는 나라가 되어야 미래가 있다. 국가가 아이들을 키워 주어야 한다. 영아를 돌 봐 주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정부가 책임지는 공교육제도의 도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새 학기가 되면 학용품 사라고 개학수당 주고, 아이들이 많을수록 세금감면 혜택을 크게 주어야 한다. 자녀 수가 셋 이상이 되면 은퇴한 후에도 ‘아이들 키우느라 고생 많았다.’고 노후보장 혜택도 주어야 한다. 아이 키우는데 힘들지 않으면 아이를 낳지 않을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현 춘 식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