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4월은…

2005-04-13     조정의 논설위원

 “벌써 3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라도 역사적 진실을 밝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말은 1975년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있은 지 불과 17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 하재환(당시43세)씨의 부인 이영교(71)여사의 피맺힌 절규다.

그의 울부짖음이 아니더라도 역사적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암울했던 시절의 무쳐졌던 진실들은 피나는 노력 없이는 밝혀지지 않는다. “세월이 지났는데 그까짓 사건쯤이야” 하고 무덤덤하게 치부해 버리면 진실은 흙 속에 무쳐지고 세월은 지난 일들을 잊은 채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망각의 세월이라는 말로 매듭지어진 역사적 사건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이 땅에 몰아쳤던 1948년 4월의 사건에 대해서는 이제 역사적 진실이 하나 둘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진실이 밝혀지기까지는 57년이나 되는 긴 세월이 흘렀다. 그나마 인혁당사건의 하재환씨는 대법원확정판결이라는 법의 절차를 거쳤다고 했다.

1948년, 이 섬에는 확정판결은 고사하고 법의 근처에도 못가보고 젊으나 젊은 생명들이 한두 발의 총성으로 이슬처럼 사라져갔다. 아들이, 남편이, 아버지가 죽임을 당해도 숨을 죽이고 살아야 했던 57년의 세월은 정녕 암울했다. 

그해 늦은 가을, 가을비가 추적이는 어느 오일장에는 이웃 마을에 소개령(疏開令)이 내려졌다는 말이 나돌았다. 어느 집 아들이 잡혀갔다는 말도 들리고 집을 불태운다는 말도 들렸다. 어머님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해안가 경찰지서에서 불과 2km 남짓한 마을, 이백 몇 십 년, 7대가 대물림하며 살아온 열일곱 가구는 이때 마을을 떠나야 했다. 해안가에서 2km, 당시 이 마을이 초토화작전지역에 포함된 연유를 지금도 알 길이 없다.

모두가 잊혀지지 않는 세월 속의 일들이다. 반세기를 넘긴 일들을 가슴에 간직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마는 이제 참담한 역사의 한가운데서 떠밀려 살아온 어머님도, 삼촌도, 할아버지도 세상을 떠났다. 그나마 한두 사람이 살아 있다고는 하나 그들은 그 때의 참상에 대하여 고개를 흔든다.

역사의 증인이어야 할 그들이 역사적 진실을 외면한 채 세상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갓 장가를 든 이웃집 시숙이 총살당하고 갓난쟁이를 부둥켜안고 눈물짓는 젊은 아내를 두고 수물 세 살의 그의 형도 죽임을 당했다. 어머님은 그 비참한 역사의 현장에 서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반세기를 훌쩍 넘긴 세월이다. 대통령도 총리도 고개를 숙였다. 4.3의 영령들에게, 그리고 사죄한다는 말도 했다. 이러한 일들이 좀더 일찍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왜, 없으랴 마는 때가 늦었다고 누구를 탓하겠는가. 모두가 역사의 죄인 것을….

“이제라도 역사적 진실을 밝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말은 인혁당 사건으로 형장의 이슬이 된 하재완씨의 부인 이영교 여사 한 사람만의 절규가 아니다. 그 보다 훨씬 오래전의 사건들을 매듭짓지 못하고 우리는 57년이나 긴 세월을 보냈다.

총살을 당하고 죽어간 사실만이 역사적 사건일까.
집을 불태우고 해변 가 마을을 전전해야했던 쓰라린 세월을 가슴에 안고 가신 어머님의 역사도 진실은 밝혀져야 하는 것이다.

폭도 마을에서 내려왔다고 손가락질을 받으며 응어리졌던 그 때의 가슴앓이가 아슴아슴 도지는 4월은 잔인한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