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질 것 같은 박진감과 인간애, 이것이 복싱이다”

[꿈을 찾아나선 아이들] 5. 복싱 유망주 남녕고 구수현 군

2014-03-02     문정임 기자

사춘기 뜨거운 호기심 메워준 운동의 길
승리 기술은 화 누르고 다음 수 노리는 인내


[제주매일 문정임 기자] “자! 박스(box, 복싱 경기에 참여하는 것)! 주먹 가볍게! 왜 급하게 들어가! 치고 나갈 땐 확실히 쳐!"

지난달 28일 오후 남녕고 복싱장. 마침 이날은 남녕고 복싱팀(12명)과 울산에서 전지훈련차 내려온 정보통신고 복싱 팀간 경기가 한창이었다.

냉랭하던 연습실이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와 코치들의 힘찬 음성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3분씩 3라운드 진행되는 경기. 10분 대전이라고 쉽게 볼 일이 아니었다. 1라운드가 시작되고 곧 선수들의 얼굴은 상대편의 펀치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치아를 보호하기 위해 착용한 마우스 피스사이로 침과 땀이 뒤섞여 흘러내렸다. 선수들이 코너에 몰릴 때면 링 밖 사람들에게까지 링의 진동이 전해졌다.

이날 경기는 총 세 팀, 이중 오늘의 주인공 구수현 학생(17, 고 2)이 끼어있었다. 크지 않은 키에 60kg 라이트급인 구수현 군은 중2때 복싱을 시작해 그해 전국아마튜어복싱우승권대회(2011)에서 중등부 금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2012년 전국 중고연맹회장배 복싱선수권대회 은메달, 전국소년체전 동메달을 연이어 수상했다. 체육계는 ‘제주 복싱의 기대주’라 부른다. 상대방의 주먹을 빨리 보고, 다양한 기술을 구사해 상대가 다음 기술을 예상하지 못 하게 하는 것이 구군의 강점이다.

▲ 복싱은 기회를 기다리는 경기 
시작은 호기심이었다. 어느 날 친구 셋이 한라중 복싱부에 함께 들어갔는데 구군만 남았다. 형(남녕고 레슬링부 졸업 구현욱)이 운동하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일까. 자연, 사춘기의 호기심과 따분함을 메워줄 수 있는 건 운동뿐이라고 생각했다.

복싱은, 손과 눈이 빠르면 되는 경기라고 생각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감정조절. “화난다고 동작이 커지면 안 돼요. 상대에게 더 잘 보이니까” 구군의 기술적 장점이 여기서 나온다. 커버(주먹을 얼굴 앞으로 올린 공격자세)를 풀고 상대방을 약 올리다가 갑자기 안으로 치고 들어간다. 나보다 팔이 긴 상대를 만났을 때 특히 유용하다. 복싱에서 이기려면 당장의 화를 누르고 한 수 뒤를 노리는 것이 중요하다.

▲ 꿈을 향한다는 건 두려움을 이겨내는 일
호기심으로 시작한 선수생활에 잇단 수상 성과가 이어지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두려움도 생겼다. “중학교 땐 마냥 재미있었는데, 진로를 생각할수록 진지해지는 것 같아요. 가장 겁나는 건 다쳐서 재활이 불가능해지는 것이죠”

모든 선수들의 꿈은 올림픽 금메달이다. 언제일지 모를 영광의 날을 위해 끊임없는 연습과 도전, 몸 관리, 그리고 마인드컨트롤이 필요하다.

“경기 때처럼 꿈을 향해 가는 동안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다잡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동적인 활동 외에 감성적인 취미를 가지려고 해요. 책을 읽고 실용음악학원에서 보컬 트레이닝도 받고 있어요. 운동만큼 노래가 즐겁고 힘이 돼요. 가장 좋아하는 곡은 포멘의 ‘베이비 베이비’고요(웃음)”

그리고 선수들에게 빼놓은 수 없는 한 가지. 바로 코치와의 관계다. “잊을 수 없는 분은 한라중 홍성훈 코치님이죠. 센스(기술)를 자유롭게 허용해 자신감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지금 남녕고 강동균 코치님은 동작 하나하나에서 빈틈을 주지 않는 기술의 정석을 가르쳐주시고요”

▲ 다시 복싱의 전성기를 기대하며
복싱은 어렵다. 체급 조절을 위한 식생활 관리, 매일 계속되는 운동, 좁은 진로도 불안하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고교 졸업 후 실업팀에 들어가 스물한 살에 국가대표가 되고 언젠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반드시 따고 말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가슴에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때쯤 복싱이 예전의 인기를 회복했으면 좋겠어요. 경기장에 와보세요. 선수들의 땀과 흥분, 쉴 틈 없이 공기를 가르는 코치들의 커다란 음성, 링을 둘러싼 사람들의 환호…그 현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복싱은, 가장 인간적인 경기에요. 가슴 뭉클함과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박진감을 동시에 주거든요”

구군의 하루는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5시50분 시작됐다. 매일 세 번의 훈련과 세 번의 샤워, 세 번의 식사. 지루하다면 지루한 생활이지만 믿고 있다. 오늘의 따분함이 자신을 세계무대로 이끌 자양분이 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