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에서 학생시절 향수 느끼세요"
[박수진이 만난 사람 18] 스페이스 말리 박정수 사장
칠성통에 위치한 대부분의 상가들은 오후 10시쯤이 되면 문을 닫는다. 그런데, 바로 여기. 칠성통 아케이드 거리에 들어선 '스페이스 말리'는 오후 6시가 다돼서야 문을 연다.
이곳은 주변 가게에 불이 하나 둘씩 꺼지는 오후 9시부터가 '피크'다.
스페이스 말리는 자메이카의 싱어송라이터 밥 말리의 음악을 시작으로, 3000장의 LP판까지… 30대 이상이라면 학생 시절 향수를 느낄만한 충분한 곳이다. 25일 박정수 사장(사진)을 만났다.
부산이 고향인 박씨가 이곳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제주 곳곳을 둘러보던 박씨는 지인들로부터 이곳이 제주의 '원도심'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때문에 30대 이상의 향수가 배어있는 이곳이야 말로 가게를 열기에 제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곳에 가게를 낸다고 하자 지인들이 걱정을 많이 했죠. 오후 9시만 넘어가면 하나둘씩 가게 문을 닫는데, 따로 홍보하지 않으면 가게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죠."
박씨는 지인들로부터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를 할 것을 권유받았다. 하지만 박씨는 괜히 억지를 부리는 것 같아 내키지 않았다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기계치'라는 답변도 돌아왔다.
말리는 신청곡을 틀어주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무대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공간을 내어주기도 한다.
말리에 들어오자마자 눈길을 끄는 것은 3000장의 LP판. 밥 말리와 비틀즈는 기본이고, 생소한 가수들까지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박씨는 비가 오는 날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김광석의 음악은 듣는 이들의 감성을 촉촉히 적셔준다고 했다.
특히 무엇보다 눈에 띄는 점은 100년 된 축음기가 있다는 것이다. 축음기는 1890년대 에디슨이 발명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해주었다.
박씨가 기자에게 보여준 축음기판은 LP판 보다는 무게가 나가고 조금 더 작았다. 축음기에서는 흑백영화에서나 들을법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박씨는 "축음기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손님도 있었다"며 "축음기는 나에게 있어 정말 소중한 보물"이라고 말했다.
인적이 드문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하기는 쉽지 않을 것만 같았다. 박씨가 1년 6개월 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곳을 꾸준히 찾아주는 손님들이 있기 때문.
그가 말하는 '밤의 문화'는 짜릿하다. 가게 문을 여는 순간 설렘은 시작된다. 말리를 찾는 손님들은 향수에 젖어들어 밤을 꼬박 샌다. 가게는 오후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운영되지만, 이야기보따리를 풀다보면 새벽 4시가 되기 일쑤다.
박씨는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다는 말이 있다고 했다.
"손님들로부터 오래오래 중앙로를 지켜주었으면 하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곳이 다시 예전처럼 활성화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일단 우리가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힘이 닿는 한 중앙로를 지켜나갈께요."
스페이스 말리 주소= 제주시 칠성로길 칠성동 34번지 2층. 말리를 조금 더 쉽게 찾아가려면 음식점 '보통사람들'을 찾으면 된다. 문의)070-7743-38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