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길목에서

2013-12-30     제주매일

    
 염천 지긋지긋했던 2013년의 여름, 무더위는 쓰러지지 않으려 하였다. 한 치 양보도 없이 버텼다. 염천의 고집, 더위를 놓아주지 않는 고집, 비도 얄밉다면서 내려주지 않았다. 태풍도 와주지 않았다.
 그렇게 버티다 제풀에 힘이 빠져 고집을 풀었다.
 이제 가을로 가야하나 하며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자기 성찰을 하였다. 여름인 나는 염천과 함께 걸어간다는 데서, 좋은 친구라면서, 더 좋은 친구가 될 것이라면서 지냈었다.
 그동안 아무 탈 없이 지낸 것에 감사하였다. 섭섭한 게 있다면 마음 너그럽게 털어버리고 손 꼭 붙잡고 헤어지지 말자고 하였다. 산 같이 그대로 있자 하였다. 마음만은 그렇게 먹고 지내자면서 헤어져야함을 아쉬워하였다. 하지만 우리 자신만의 행운을 위해 신경 섰었던 잘못을 뉘우치는 시점에 이르렀다며 크게 용서를 빌었다. 고통 받았던 모든 이들에게. 염천 때문에 고생했던 모든 분들에게 사죄를.  
 깊이 반성하고 나서야 새로운 삶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출발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가을로 들어섰다. 산과 들, 바다와 파도, 사람과 뜻 모으는 노력을 하였다, 
 튼튼한 몸 만들려고 힘썼다. 걸었다 달렸다. 뒹굴기도 하였다. 도움 되는 모든 일 가능하면 다 하려 하였다. 정상수준에 달하려 안간힘 다 하였다. 집념 강하였다. 인품의 수준도 높이려 하였다. 수많은 덕목이나 행위의 수준을 높이려 하였다.
 건강을 바탕으로 책임감 인간관계 협동심 겸양의 덕 인사예절 인간존중 자제심 신사도 같은 덕목들의 행위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러한 일들은 보는 눈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부족한 하나의 인격체라도 변모된 일면을 인정받으려는 암묵적 희망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수준 앞에 눈 맞춰 놓았다. 점진적으로 높여갔다. 자질의 향상은 조금씩 진행하였다. 아름다운 사회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 지식과 동심(動心)이 축적되었다.
 태만하다가는 여차하면 부족한 인간이다 하는 지엄한 판정 받아 몸 둘 바 모르는 일이 발생한다며 노력 또 노력하였다.
 가을은 지나가는데 막아 선 가로대 없길 바라며 넋두리를 늘어놓으며 자기 성숙을 위해 지낸 시간이었다.
 가을을 잘 넘겨 겨울로 접어들었다. 가을의 추억을 군고구마 먹으며 음미해 보는 것도 좋을 일이라 믿었다.
 삶의 길에는 수 없이 다가오는 길목이 있었다. 눈 깜박 할 사이에 찾아들어 어느 일순간 고락을 함께하였다. 보람 느끼고 후회도 하며 지낸 세월이 길목 마다 놓여 있게 하였다. 그러면서도 남에게 그늘이 되어 줄 수 없었음을 부끄럽게 여기며 낮은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도 하였다.
 그리고 겨울이라는 계절 앞에 섰다. 또 다시 말(言語) 앞에 선 인간의 체면을 생각해 보는 순간을 맞았다. 사람은 덥다 춥다고 쉽게 말하는 변덕스러운 마음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올 겨울에도 춥다는 말 남발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기후와 계절을 인내하는 강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람도 벼랑에 서 있는 한 그루 나무와도 같은 것. 탈 없이 살며 나에게 큰 울림 주는 벼랑의 나무처럼 추운 겨울을 이겨나가자. 보라 저 환영(幻影), 힘이 불끈 솟아오르게 격려해 준다.
 이루고 못 이룬 꿈 함께 가는 가운데 2013년도가 아쉽게 다 저문다. 획 달려간다. 그렇게 빨리 달려들 가서 후회는 없겠는가. 그래도 잘 보내자. 그래서 내일 희망찬 2014년 새해를 맞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