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없이 '엄마'가 죽을때 실제처럼 화나고 슬펐어요"
'끝나지 않은 세월' 형민이의 '4ㆍ3회고'
2005-04-02 김은정 기자
목숨보다 질긴 4.3의 고통은 대를 넘겼다.
반세기가 흐른 세월의 힘도 4.3 앞에선 무기력하다.
4.3 극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감독 김경률. 제작 설문대영상)’은 극중 주인공 형민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4.3이 안겨준 고통과 한을 담아낸 작품이다.
제작비 부족 등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제주 도민을 비롯 도내 예술가 등의 도움으로 드디어 영화는 오랜 장막을 걷고 스크린에 올려졌다.
1일 영화 시사회를 앞두고 주인공 형민 역을 맡은 주용준(외도초등학교 4년)군을 잠시 만났다.
"4.3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무 이유도 모른 채 억울하게 목숨을 빼앗아간 사건인 것 같아요"
“영화를 촬영하는 게 힘들어서 울기도 했지만 극중에서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가는 장면을 촬영할 때가 가장 슬펐고 많이 울었습니다”
초등학생치고는 꽤 옹골차게 대답한 주 군에게 4.3은 더 이상 낯설고 무섭기만 한 역사가 아니다.
주 군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대사를 읊고 가슴으로 되새기며 4.3이 주는 아픔을 자연스레 피부로 느끼게 된 것.
영화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거나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아달라는 물음에 주 군이 건넨 대답은 의외였다.
매서운 칼바람에도, 무더운 여름 날씨에도 무조건 촬영을 강행해야 하는 것보다 주 군의 가슴에 깊게 자리한 건 한겨울 동굴 안에서 엄마가 경찰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장면.
“영화였지만 이유도 없이 엄마가 죽을 때는 실제처럼 화가 나고 슬펐어요. 피와 시체들로 가득한 동굴안에서 촬영이 가장 힘들었지만 뭉클했어요”라고 말하는 주 군의 표정엔 사뭇 진지함이 묻어났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영화 촬영으로 친구들과 마음껏 뛰놀지 못한 주 군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기라도 하듯 앞으로 뭐가 가장 하고 싶은지 물었다.
“같은 반 친구들에게 4.3에 대해 말해 주고 싶다”며 서둘러 자리를 뜨는 주 군의 뒷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제주가 만들어낸 최초의 4.3장편극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은 1일부터 3일까지 코리아 극장 3관에서 11시 30분. 1시 30분에 무료 상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