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논의 별
서귀포 시내에 커다란 호수가 있었다. 맑은 물이 나오는 호수 안에 섬이 하나 떠 있고, 밤에는 별빛이 아름다운 호수였다. 이 호수의 이름을 역사서에는 ‘큰 못’(大池) 으로, 또는 ‘조연’(藻淵)으로 기록한다. 우리는 그곳을 지금 ‘하논’이라 부른다. 500년 전 ‘하논’은 논밭으로 변했다.
<탐라지(1653년)> 기록에 의하면 하논의 분화구를 무너뜨려 큰 논을 만들었다 전한다. 1521년에 관수미를 재정하여 받도록 하였는데, 큰 못(大池)이 이런 연유로 하논이 되었고 관수미를 위한 논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하논의 쌀은 궁휼한 백성을 위한 먹거리가 결코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백미로 만든 밥과 떡을 제주사람들은 ‘곤밥’(쌀밥), ‘곤떡’(쌀떡)이라 부를 정도로 귀하게 여겼다. 그 ‘고운’ 쌀이 하논에서 나왔고 우리의 조상들은 곤밥 한 그릇 젯상에 올리는 것으로 고된 노동의 대가를 치렀다.
한라산 허리 따라 하논 웃거제를 내려왔던 노루도 발길을 끊는지 이제 60년이 되어간다. 노루가 물을 마시러 내려온 이 분화구 곳곳에는 ᄆᆞᆯ망소, 보로미, 동언새미, 섯언새미, 큰굴왓, 개구기, 동언장, 큰낭밧, 촐왓...자연을 닮은 이름으로 가득하다. 날마다 수도 없이 드나들던 이 하논의 구석구석을 제주사람들은 자연을 닮은 제주말로 풀어 놓았다. 소중한 지명과 더불어 역사의 고비마다 하논 분화구 안의 켜켜로 쌓인 이야기는 아직 생생하다.
하논은 일제 강점기 수로를 대대적으로 정비한다. 자연스러운 논밭의 형태에서 지금의 논으로 변신하고 다시 70년대 전후해서 하논 비탈은 감귤과수원으로 변모를 거듭한다.
야구장으로 만들자는 의견에 박수를 쳤던 이들도 있었다. 경제의 잣대를 꺼내는 것이 오늘날의 모습이다. 미래를 내주게 되는 위험을 안고 있는 곳이 제주에 하논 뿐이겠는가. 2012년 세계환경보전총회 의제로 하논 복원, 보전이 채택되기까지 10년간의 노력으로 개발의 속도를 조금 늦추어 졌다. 4대강으로 국가 기관의 부채비율이 높아진 오늘의 현실은 결코 희망적이지는 못하다. 국비 지원을 받아야만 속히 이루어질 수 있는 하논 복원의 고단한 여정은 시작처럼 아득한 느낌을 준다. 먹고 살기위한 개발 논리는 늘 우리의 등 뒤에서 끝없이 유혹하기에 말이다.
현실은 그렇지만 보다 넓은 안목으로, 도민의 힘으로, 차분히 준비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것이 지역주민과 인류에게 무슨 이익이 있는가, 지속가능한 자연으로 돌려놓는다면 바뀔 수 있는 것 등 세상을 향한 거시적인 논리 외에 구체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모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과학적인 연구 노력과 더불어 이곳이 제주 역사에 어떻게 핵심적으로 연관되어 있었는가 하는 인문적 연구 깊이도 중요하다. 이것에 새로운 문화와 예술의 옷을 입혀 감동을 주는 의미의 다양한 해석은 반드시 필요하다. 결국,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문화가 있는 감동의 에너지이기에 말이다.
신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연화못’이 하논 큰 연못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생명을 상징하는 물, 하논 큰 못은 다시 우리 힘으로 만들어가는 신화가 되고자한다. 제주도민들이 자연을 향한 애정으로 이끌어낸 상징적 장소로써의 ‘하논 그 복원의 꿈’그 과정 또한 역사는 기록 할 것이다. -조형작가 변명선